가끔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이런 일상 실험을 한다. 내릴 때 일부러 기사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이다.

"기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부분 기사는 밝게 화답한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대상은 기사가 아니라 뒤따라 내리는 다른 승객이다. 바로 앞에 내리는 승객이 기사에게 또박또박 인사하는 상황은 다음 승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십중팔구 인사를 건넸다. 혹시 원래 인사하려던 사람은 아닐까? 2018년 부산~창원 시외버스를 이용하면서 63회에 걸쳐 이 상황을 기록한 메모를 우연히 발견했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 42회 가운데 다음 승객이 인사한 횟수는 39회(92.8%)나 됐다. 인사를 생략한 21회 중 다음 승객이 인사한 횟수는 9회(42.8%)에 그쳤다.

2020년 7월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한 사거리가 깨진 소주병과 상자로 엉망이 됐다.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채 고속으로 좌회전을 하던 차에서 쏟아진 것이다. 비까지 내려 2차 사고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화물차 운전자가 현장으로 돌아와 어떻게든 정리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침 사고 현장에 있던 고등학생들이 나섰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을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도 합류했다. 주변 상점 직원이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자 일은 더 속도가 붙었다. 답이 없어 보였던 사거리는 빠르게 정리됐다.

이 작은 기적은 차량 운전자를 돕고자 나선 고등학생 세 명에게서 비롯한다. 만약 같은 상황에 누군가 멀쩡한 소주병을 들고 도망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선행(善行)의 선행(先行)'은 생각보다 많은 기적을 낳는다. 마침 오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랑또랑 먼저 인사를 건넨 꼬마 덕에 평소 눈도 마주치지 않던 16층 이웃에게 인사를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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