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르 마구잡이로 섞어 차린 공연들
잡탕 같은 기획에선 웅숭깊은 맛 못 느껴

나만 그런가? 가끔 뷔페식당에서 식사하고 오면 무언가 허전하다. 심지어는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서 이 마음을 달랠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중국·일본·이탈리아에 이르는 음식을 만나고 왔는데, 괜히 본전 생각이 나서 몇 번이나 접시를 바꿔가며 먹고 왔는데, 돌아서면 헛헛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복합웰컴센터'라는 건물이 있다. 영화관도 있고, 클라이밍장도 있고, 어린이 체험관과 카페도 있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 모양이지만, 복합이라는 기능성 단어에 웰컴이라는 뜬금없는 영어가 왜 붙어 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행정가들은 융합이나 복합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요즈음은 아예 두 단어를 붙여서 융복합이란 단어를 쓰는 게 유행인 것 같다. 그러나 말이 좋아서 복합이지, 이질적인 것들을 뭉쳐놓겠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그렇게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되어선 안 될 말이다.

복합의 발상이 만들어낸 유산이 예전에 지어진 문화회관이나 시민회관이었다. 가요도 부르고 클래식도 연주하고 심지어는 기념행사도 할 수 있는 복합공간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건물은 덩치만 컸지 어떤 공연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경우가 많다. 하드웨어만 그런 게 아니다.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공연 부분에서도 복합은 잡탕이란 말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경우이기 십상이다. 트로트도 나오고, 포크 음악도 들어가 있고, 영화음악도 한 곡 보태고, 가곡도 부르는 식의 요란한 공연을 하고는,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올 수 있는 성공적인 공연이었노라 자화자찬한다. 이런 공연일수록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같이 잡는다는 식으로 홍보하는데, 나는 그런 때마다 맛없는 뷔페로 배만 채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음악에선 예전부터 '크로스오버'라는 단어로 융합적인 시도를 해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이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과 함께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 음반을 발매한 것이 1975년의 일이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같이 <퍼햅스 러브>를 부른 것이 1981년이었다. 이즈음부터 크로스오버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재즈와 클래식, 월드뮤직과 클래식, 심지어는 메탈 음악과 클래식 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섞였다. 음악적으로 멋진 시도도 있었지만, 이도 저도 실력이 안 되는 얼치기들이 만든 기획도 많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확인한 것이 있다. 창조적인 크로스오버 작업은 각각의 영역이 다양하고 튼튼하게 존재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좋은 기획은 대부분 덧셈이 아니라 뺄셈에서 나온다.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는 게 아니라, 이것은 빼고 저것은 걸러내는 데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양과 가짓수로 대결하는 음식점보다는 재료와 맛으로 경쟁하는 단품 요리 전문점이 많아지면 좋겠다.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한 곳에 비벼 넣은 음악회가 아니라, 전문적인 영역의 공연이 다양하게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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