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관 주도 체험마을 붐…인적·물적 자원 부족 한계 봉착
쉬운 시작만큼 금세 사그라져…주민여행사 준비에 교훈 삼아야
코로나로 대형여행사 국내 선회…종식 후에는 국외로 눈 돌릴 것
떠난 자리 결국 주민여행사 몫…도농·사람·세대 이을 구심돼야

◇전국에 불기 시작하는 주민여행사 설립 붐 = 2004년으로 기억한다. 농촌을 배우고자 1년 동안 매달 수원까지 가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잘 키운 공무원 하나 열 기업 부럽지 않다"였다. 이때 나는 공무원 15년 차,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말이 내게 환청처럼 들렸던 적이 있다.

최근에 주민여행사 설립 붐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껏 내가 맞이했던 주민여행사 준비단체는 적어도 서른 곳이 넘는다. 고무적인 일이요, 바람직하다. 농촌지역만 아니다. 도시지역조차 골목길 여행을 준비하는 곳이 더러 있다. 그런 도시를 방문해서 주민들과 대화도 해 보고 함께 골목길을 답사하면서 서로 고민을 나눴던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이 일로 두 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모두 골목길과 지역 문화유산을 자원으로 여행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곳이다. 한 곳은 골목길 재생사업을 통해 주민 주도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곳이며 또 하나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곳이었다. 성공 여부는 뒤로하고 고무적인 것은 주민 주도 마을 운동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 여행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 '트래블 헬퍼'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사회적기업의 정신이 담겨 있다.  /조문환 시민기자
▲ 여행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 '트래블 헬퍼'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사회적기업의 정신이 담겨 있다. /조문환 시민기자

◇들불처럼 번졌던 체험마을 = 최근의 이런 주민 주도 여행사 설립 붐 이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부 여러 부처에서 만든 체험마을이다. 2017년 통계자료를 보면 국내에 정보화마을 325개소, 녹색농촌체험마을 1002개소, 어촌체험마을 100개소, 산촌체험마을 66개소, 에코빌리지 70개소, 교육농장 621개소, 팜스테이 2만 5035개소, 융복합비즈 1130개소, 스타 팜 470개소, 관광두레 197개소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에 생겨난 것들이다.

아쉽게도 지금 이 체험마을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그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먼저는 규모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체험마을은 많아야 100가구 정도의 자연마을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인적, 물적 자원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 탓에 염색 체험, 떡메치기와 같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것으로 지속 가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 고유자원이 바탕이 되지 못함으로써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0가지 질문 = 체험마을이 들불처럼 번졌다가 사그라졌던 이유 중 또 하나를 든다면 관 주도를 들 수 있다. 시설과 재원 지원으로 쉽게 시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모으고, 재미를 주고, 교육 효과까지. 재방문도 높여야 지속 가능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자연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주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현 시점에서 주민여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지금껏 나와 '놀루와'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10가지 질문을 만들어 말씀드리고 있다. 왜 주민여행사를 하시려 합니까? 이 일에 전력투구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누가 할 것입니까?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담보하실 수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자원과 자산은 무엇입니까? 조직의 일에 얼마나 협력할 수 있습니까? 창조적 인재와 리더가 있습니까? 이 일이 얼마나 간절하십니까? 지역사회와 얼마나 소통하고 협력합니까? 주민여행사를 무엇이라고 규정하십니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질문에 적어도 7가지 이상은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해낼 수 있지 싶다.

▲ 주민여행사는 지역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도 그 수행범위 안에 들어간다. '짚신 신고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는 역사 속에서 나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조문환 시민기자
▲ 주민여행사는 지역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도 그 수행범위 안에 들어간다. '짚신 신고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는 역사 속에서 나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조문환 시민기자

◇주민여행사 운영 7원칙 = 10가지 질문을 받은 방문자들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의 체험마을처럼 쉽게 다가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호회 정도로 운영할 것이라면 굳이 10가지 질문과 같은 것들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어서 나는 이분들에게 '주민여행사 운영 7원칙'을 제시해 드린다. ①점선면(點線面) 원칙(각자 흩어져 있던 지역의 자원·사람·장소 등을 의미 있게 엮어 점이 선으로, 선이 면이 되도록 함) ②융복합의 원칙(지역의 자산인 문학·예술·생태·교육·스포츠 등을 여행과 엮음) ③지역고유자원 특성화 원칙(우리가 가장 잘하고 우리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프로그램) ④적정규모의 원칙(자연마을을 넘어 적어도 몇 개 읍면동, 나아가 소재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를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지역을 기반으로 함) ⑤지역사회 또는 마을과 함께 원칙(홀로 독야청청할 수 없으므로 지역의 구성원들과 협력 관계 유지) ⑥수익성 원칙(최소한의 수익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함) ⑦공공기관과 협력 원칙(지자체, 관련 지원기관 등과의 협력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기에 안착하게 함)이다.

◇왜 주민여행사인가? = 코로나19로 해외 중심의 마케팅 활동을 펼쳤던 굴지의 공정여행사들까지 국

▲ 여행자와 지역민이 함께 어울리는 행사는 상호 상생을 이룬다. 놀루와의 '슬로워크'는 하동차(茶)와 느림을 테마로 지역민의 협업으로 이뤄냈다. /조문환 시민기자
▲ 여행자와 지역민이 함께 어울리는 행사는 상호 상생을 이룬다. 놀루와의 '슬로워크'는 하동차(茶)와 느림을 테마로 지역민의 협업으로 이뤄냈다. /조문환 시민기자

내로 급선회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형여행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방을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았다. 시골의 작은 주민여행사와 협력하려고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이분들과 주민여행사는 '급'이 다르다. 한마디로 노는 물이 다르다.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모르긴 모르되 손 털고 다시 돈이 되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코로나19가 주민여행사를 촉발했다. 국내여행 붐을 타고 여기저기에서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간과했던 국내여행이 새롭게 드러나고 숨어 있는 지역 명소들이 하나둘씩 뜨기 시작했다. 대형여행사들이 떠난 자리는 지역을 잘 아는 주민여행사들이 떠안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미우나 고우나 지역에 천착하여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보석을 캐내어 갈고닦아 꿰는 작업을 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어야 2년 정도의 공직자 순환근무원칙도 지역의 건강한 주민여행사가 버티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 중심의 관광정책에서 숨어 있는 보석을 캐내는 일과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 테마와 테마를 엮어 '물건'이 되게 하는 일을 주민여행사가 담당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지역의 숨어 있는 장소는 청소년은 물론 어르신들에게까지 소중한 교육장소가 된다. 주민여행사는 마을과 골목길을 재생하는 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기성의 여행사들로서는 돈도 안 되고 흥미도 없는 일이나 이들은 주민여행사의 존재 이유다.

▲ 협업과 융복합은 주민여행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원에서 글짓기는 그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조문환 시민기자
▲ 협업과 융복합은 주민여행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원에서 글짓기는 그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조문환 시민기자

◇잘 키운 주민여행사 하나 = 나는 지역민들과 함께 2018년에 주민여행사를 설립, 4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참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도 매일 알게 된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에 감사도 한다. 지역의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고 도시의 청년과 농촌의 중년을 연결하고 지역의 숨은 자원을 발굴하고 5년이나 10년을 내다보고 지역을 꿈꾸는 일을 함께 도모해 나간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돈이 안 되면 포기하고 돈이 되는 곳이 있으면 손 털고 떠나 버리는 회사와는 다른 DNA를 가졌다고 하면 과한 말일까? 나는 지금껏 '놀루와'를 찾아오는 주민여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돈이 되는지를 떠나 정성을 다하고자 했다. 전라도 어느 섬에서 오셨던 어르신들의 지역을 살려내야 한다는 그 애절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경상도 K시에서 오신 여성대표들의 열성과 눈망울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잘 키운 주민여행사 하나가 있다면 지역으로서는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한 그루 둔 격 아닐까?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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