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회 공연·수상 경력 화려
장애인만의 아름다움 표현

16일 오후 진해장애인복지관 2층 대강의실. 유철(54) 연출가는 두 손으로 쥐어짜듯 얼굴을 찌푸리며 단원에게 "좀 더 괴로운 표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결혼식 하객 역할을 맡은 단원은 유 연출가의 주문을 듣고 눈을 찡그리고 "아~" 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어 유 연출가는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결혼하는 주인공에게 "하트, 하트"라고 말했다. 두 남녀는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렸다.

극단 햇빛촌은 2010년 창단한 경남에서 유일한 발달장애인 극단이다. 2009년 서울에서 극단 산의 공연을 보고 복지관 측은 이듬해 장애인 연극교실을 열었다. 단원은 총 11명이며 유 연출가는 창단 때부터 함께한 연극 선생님이다.

햇빛촌은 장애인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지역민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치유를 선사했다. 그동안 <숨바꼭질>, <웃어라 호야>, <뛰어라 뛰봉>, <철수와 영이> 등 70여 회를 공연했다. 햇빛촌 공연을 본 관객만 1만 명이 넘는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감정을 나누는 일이 낯설다. 장애인 부모마저도 자식이 무대에 서기 전까지 "우리 아이가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의심했다.

의심은 무너졌고 편견은 깨졌다. 장애인은 발음이 좋아졌고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천천히 이해하려 노력했다.

창단 멤버인 이성재(30) 대표는 연극을 하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무대 위에선 자유를 만끽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성격이 소심했다"며 "연극을 하니까 스트레스가 풀리고 성격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또 "공연을 보고, 또 무대에 서니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은숙(54) 단원은 2012년 제8회 나눔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최 씨는 "현실에선 다양한 모습으로 살 수 없으나 배우는 '천의 얼굴'로 무대에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발달장애인 연극단 햇빛촌이 16일 오후 진해장애인복지관에서 연습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발달장애인 연극단 햇빛촌이 16일 오후 진해장애인복지관에서 연습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극단에서 '연습벌레'로 통하는 임춘섭(44) 단원은 2019년 제13회 밀양아리랑연극제 연기 금상을 받았다.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안전벨트를 만드는 일을 하는 임 씨는 연극이 좋아서 하던 일의 시간을 줄였다.

그는 "연극을 배우고 싶은데 일이 늦게 마쳐서 시간을 조절했다"며 "일만 하면 삶이 지겹다. 멋진 연극인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사암기 천재'로 통하는 이도 있다. 제13회 밀양아리랑연극제 연기 은상을 받은 조수훈(27) 단원. 조 씨는 진해구청 안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그는 <뛰어라 뛰봉>에서 항상 뛰어야 하는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 5㎏이나 빠졌다. 조 씨는 "연극이 그냥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단원은 각자 일을 하고 매주 월·수·금 오후 4시 30분~6시 30분 연극을 배운다.

10년이 넘게 극단이 운영될 수 있었던 건 단원뿐만 아니라 유 연출가와 허은영(38)·이금비(41) 등 진해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컸다.

장애인복지관 측에서 진해 극단 고도의 연출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고 유 연출가는 창단 때부터 함께했다.

유 연출가는 "오랫동안 가르쳐와서 힘든 점도 잊어버렸다"며 "최종 목표는 단원이 연출가, 극작가가 되어서 5분이든, 10분이든 창작극을 만드는 거다"고 포부를 밝혔다.

두 사회복지사는 "단원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자격증을 따고 중·고등학교에서 장애이해교육을 하는 등 열심히 활동 중"이라며 "장애인이 예술가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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