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 시인 여섯 번째 시집

오인태(59) 시인이 10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 <슬쩍>을 냈다. 그는 짧은 시 쓰기 운동을 벌인 '작은시(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하며 써온 시를 이번 시집에 모았다. 시 70편이다.

대체로 시가 짧다. 한 행짜리 시도 많다. 오 시인에게 '짧은 시'라는 의미는 시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현대시가 난해하고 산문화되는 경향을 비판하며 시를 독자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짧은 시를 썼다.

오 시인은 "길고 수다스러운 시가 많다. 시를 읽으면 골치 아프고 공감하기 어려워 시와 독자가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시의 본질, 즉 동일성, 현재성, 집중성을 구현하다 보면 시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오인태 시인.
▲ 오인태 시인.

"뜨다가, // 뜨겠지."('한 술의 생애' 전문)

여기서 말하는 '뜨다'는 밥 한 술 뜨다처럼 먹는 행위를 뜻한다. 호병탁 문학평론가는 이 시를 두고 "가장 짧지만 가장 긴 해설을 재촉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실상 어찌 보면 우리 삶은 평생을 밥술 뜨다가 어느 날 밥술 놓고 세상을 뜨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의 성정은 관념적·철학적 사유를 단언적이거나 직설적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뜨겠지"는 '뜰 것이다' 정도의 예측성 발언이다. '떴다' 같은 확정적 발화는 아닌 것이다. 시인의 겸손은 자신의 작품이 결코 교시(敎示)적으로 보이는 것을 삼가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삶에서 야기되는 고통, 비애, 고독이나 갈등을 비켜선 어떤 초연한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의 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일렁이는 달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호병탁)

오 시인은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한다. 첫 산문집 <시가 있는 밥상>(2014년) 제목도 그렇고 이번 시집 제목도 사람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오 시인은 SNS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고 '슬쩍'이 표제로 선정됐다.

▲ 오인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슬쩍>
▲ 오인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슬쩍>

"대저, 뭇 생명이 서로 곁을 내줘 숨 쉬고 사나니// 재빨리, 또는 넌지시"('슬쩍' 전문)

그는 종종 SNS에 직접 차린 밥상 사진과 시를 올리는데 이번에도 음식 관련 시가 있다. 남해교육지원청 등지에서 근무한 경험도 녹였다.

"돌아올 며느리도 없는데// 적소(謫所)의 사립으로 귀가 쫑긋!"('전어구이' 전문)

"사월에 오시다/제법 해가 길어진// 정오쯤 미조포구 도착해서 도다리쑥국이든 멍게비빔밥이든 시장한 마음 점 하나 찍고 조선소 앞 오인태 시비도 둘러보고// 좌로 돌면 동백꽃 오십 리/우로 돌면 유채꽃 오십 리// 때마침 앙등하는 치자꽃 향기와 고샅마다 멸치액젓 달이는 냄새와 건들건들 비릿한 바람과 잠깐, 유채나물 겉절이라도 무친 알싸한 몸내와"('남해에 오시려거든' 전문)

페이스북 친구가 많은 오 시인은 벌써 여러 독자에게서 "재밌다", "짧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말을 들었다. 복효근 시인은 "촌철살인이다", 이성철 창원대 교수는 "짧지만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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