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 치우며 시작하는 하루
축사 옆 건물에서 그림 몰두
"나만의 세계 있어야 살아남아
독특한 세계관 계속 연구할 것
먼훗날 이곳 미술관 만들고파"

소 키우는 화가 김도형(50) 씨에게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다. 물감을 묻힌 붓을 들 때, 그 붓으로 화면에 선을 긋고 색을 칠할 때 그는 뭔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밭농사도 짓고 닭과 돼지를 키우던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할 때도 항상 작가 곁엔 그림이 있었다. "열심히 할수록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파고들수록 매력이 넘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그림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됐죠." 지난 12일 오전 11시 김해 한림면 용덕리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그를 만나 그간 작가가 걸어온 길을 들어봤다.

▲ 김도형 화가는 오전 5시가 되면 축사로 출근한다. 소에게 사료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 바로 옆 건물 꼭대기 층이 그의 화실이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는 오전 5시가 되면 축사로 출근한다. 소에게 사료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 바로 옆 건물 꼭대기 층이 그의 화실이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 작업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 작업실. /최석환 기자

◇농사지으며 간직한 꿈

김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그림을 그렸다. 주말마다 부산 서면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주 2회씩 그림을 배우던 때다. 토요일 오전 9시가 되면 약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2시간 가까이 타고 부산에 갔다. 그는 토요일마다 하룻밤을 부산에서 묵으며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가리지 않고 화면에 담았다. 주말 내내 그림을 그리다가 일요일 오후 8시께 김해로 돌아왔다. 1년 동안 이런 일상이 반복됐다.

자연스레 그의 꿈은 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뜻대로 되진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걸 눈치로 느꼈다.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그는 부모님 업을 이어받아 농부의 길을 택했다.

"매달 12만 원 정도씩 내고 학원에서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엔 입시 미술 위주로 배웠어요. 제한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틀에 박힌 미술이었죠. 아버지의 도움 덕분에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1년간 학원에 다녔어요. 아쉽게도 미대 진학을 할 순 없었죠. 미대에 가면 돈이 많이 들게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농사일을 했죠. 닭, 돼지, 밭, 논농사를 짓던 엄한 아버지를 도왔어요. 좋아하던 미술을 손에서 놓은 건 아니었어요. 아예 놓을 순 없겠더라고요. 김해를 돌아다니면서 풍경화를 그리고, 사람 신체를 담은 인물화도 그리면서 20대를 보냈어요."

형편 탓에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김 작가. 우연히 친구 병문안을 갔다가 만나게 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3년이 지난 뒤,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1년 뒤에 작가는 꿈에 그리던 미대에 진학했다. 그는 한지 위에 오일로 소나무 그림을 그리던 고명본 선생이 교수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이후 작가는 선과 색을 화면에 담는 작업에 눈을 떴다.

"그림을 어떻게 그려내면 좋을지 방향성을 배우고 싶어서 들어간 학교였어요. 색채라든지 선이라든지 그런 걸 배우고 싶었거든요. 학교에 다니면서 고 선생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색감이나 화면 구성 같은 게 그렇죠. 선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는 게 그림이거든요. 한 포인트에 그려내고자 하는 이미지를 어떻게 넣을지가 정말 중요한데, 그런 균형을 맞춰서 그림을 그려내는 방법을 학교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이런 가르침을 계속 받다 보니 은사님과 너무 비슷한 느낌이 작품에서 나오고 있기도 해요. 이제는 그 영향권에서 탈피해야 할 시기 같아요."

▲ 김도형 화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가 축사에서 일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가 축사에서 일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새벽 5시 축사로 출근

작가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땅에 축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있다. 그의 축사엔 소 300마리가 있다. 오전 5시가 되면 축사로부터 6㎞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자택에서 차를 몰고 출근한다. 소 상태를 관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 사료도 주고, 배설물도 치운다. 쉬더라도 축사에서 쉬는 게 일상인 그다. 그림도 이곳에서 그린다. 축사 바로 옆에 창고 겸 작업실 용도로 세운 3층짜리 건물 꼭대기 층이 그의 작업 공간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간은 대개 오전 9시부터다. 소 울음소리와 선풍기 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작업실 안에서 캔버스와 물감, 붓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매물도와 나주 배밭, 프랑스 센강, 삼랑진, 해금강 등지에서 본 풍경 등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렇고, 축사를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 집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아내가 들고 있던 적금을 깨서 소 20마리 정도를 산 적이 있었거든요. 처음 소를 산 때를 기점으로 지금은 축사 4000평, 소 300마리 규모까지 커졌어요. 모두 집사람 덕분이죠. 브루셀라병이 와서 소 70~80마리를 전부 처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내가 내조를 많이 해줬어요.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커요. 작업실에서 그림을 틈틈이 그리고 있는데 한 달에 5~6개 정도 제작해요. 재료값만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드는 것 같아요."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그는 한국농수산대 한우과를 졸업한 첫째에게 축사를 물려준 뒤 작품 활동에 몰두하는 게 목표다. 그전까진 지금껏 해온 것처럼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최근엔 특수 제작한 가로 6m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풍경화를 담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작업실엔 특수 제작 캔버스가 바닥에 놓여 있다. 제작 목표 기간은 2~3년이다.

▲ 김도형 화가 작업실. 축사 옆에 있다. /최석환 기자
▲ 김도형 화가 작업실. 축사 옆에 있다. /최석환 기자

그에겐 목표가 하나 더 있다. 지금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간의 작업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여유가 된다면 이른 시일 안에 미술관을 꾸리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까지 11회 개인전과 기획초대전, 단체전 250여 회 등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은 바 있는 그가 세운 계획이 언제 실행될진 알 수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작가는 언제나처럼 붓을 들고 작업을 이어간다.

"아들에게 축사를 물려주고 미술에 몰두하고 싶어요. 훗날 붓 들지 못하는 나이가 됐을 때 이 작업 공간을 비롯한 건물 자체를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기도 해요. 제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만드는 거죠. 내가 지금까지 이런 그림을 그려왔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미술관을 시에 기증할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일단 올해는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3개 전시가 잡혀있는데, 저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파는 건 뒷일이에요. 자기 세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미술 세계잖아요. 앞으로 계속 독특한 저만의 세계를 보여주고, 또 연구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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