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투쟁 중심 평밭마을 다다르면 절경 펼쳐져
SNS 명소로 이름난 위양지 산책하며 여유 만끽도
의열기념관·영화 〈밀양〉 촬영지 등 볼거리 다양

한마디로 선명한 날이었다. 날이 맑아 경치는 물론 사물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였다. 하늘, 구름, 산, 나무, 집, 논, 도로까지 저마다 색을 뽐냈다. 자전거를 타고 만난 밀양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 여러 인물의 이야기마저 분명하게 다가왔다.

이번 자전거 유람은 부북면 평밭마을, 위양지, 의열기념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영남루, 영화 <밀양> 세트장을 되살린 카페, 삼문동 수변공원 등을 둘러보는 41㎞ 여정이었다. 자전거에 능숙하지 않은 이들은 평밭마을로 오르는 길이 힘들겠지만, 3시간 안에 모두 돌 수 있는 코스다.

◇힘겹게 오르니 절경이 마중 나와

영남루 옆 남천강변로 주차장에서 페달질을 시작했다. 곧장 연결되는 밀양대로로 나갔다. 여기서 1.4㎞ 떨어진 신촌오거리에서는 11시 방향에 있는 창밀로를 탔다. 차량 이동이 많은 편이어서 갓길로 달릴 때 주의해야 했다. 3.5㎞를 더 이동하면 춘화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위양로다. 완만한 오르막길인데 10분 남짓이면 된다. 좌우로 고개를 돌렸더니 모내기 철이다. 논에는 받아놓은 물이 찰랑찰랑하고, 왜가리와 백로가 기웃기웃한다. 농기계가 바쁘게 오가면서 한해살이 시작을 알린다.

바로 위양지로 들어가도 되지만, 평밭마을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위양지 들머리에서 800m 남짓 더 들어가면 평밭마을로 오르는 길이 있다. 위양로와 평밭마을을 이어주는 이 길은 마을 이름을 닮지 않았다. 마을 입구 주차장까지는 2.5㎞, 평평하지 않고 대부분 경사가 급하다.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다.

이처럼 거칠고 낯선 환경에 길을 오르다가 결국 서너 번 주저앉아버렸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목은 타들어갔다. 다시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굴리고, 내려서 끌고, 엉금엉금 평밭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화악산 평밭마을'이라고 적힌 마을 비석이 정말 반가웠다.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털썩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을 때는 한숨 돌리고 하늘을 봤다. 푸른 기운이 가득했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던 숲은 귀를 간질였다. 힘들게 올랐더니 절경이 마중 나왔다. 마을 입구와 가까워졌을 때 위양지와 밀양 시가지 전경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산과 산, 햇빛이 밀양 시내를 보듬었다.

평밭마을은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투쟁 중심에 있던 마을 가운데 하나다. 마을 비석이 있는 평밭2주차장 바로 옆에는 송전탑이 아찔하게 서 있다. 이곳에서 300m 남짓 더 들어가면 나오는 평밭1주차장에는 투쟁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테이너와 임시 건물 2동이 남아 있었다. '사랑방' 컨테이너에 그려진 할매는 망가진 송전탑을 손으로 불끈 쥔 채 웃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현재 진행형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위양지는 이르면 4월 말부터 5월까지 하얀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꽃으로 이름나 있다. 사계절 중 이팝꽃이 활짝 피는 시기에 이곳 풍경은 절정에 이른다. 꽃이 없더라도 짙은 나무 그늘에서 누리는 여유와 바람맛(?)이 좋다.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기는 어려워 걷기를 권한다. 위양지는 신라시대 농업용수를 대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름에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는데,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명소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이팝나무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이다.

▲ 자전거유람단원들이 위양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여유를 누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 자전거유람단원들이 위양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여유를 누리고 있다. /서동진 기자

◇독립투사 정신 되새겨

위양지에서 밀양아리랑시장까지 7.5㎞ 남짓을 달렸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내렸더니 시장기가 빨리 찾아왔다. 시장 안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뚝배기에 고기를 담뿍 담아주셨다.

배를 채우고 시장에서 200여m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365일 태극기가 펄럭이는 현장,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다. 밀양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이곳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밀양 열사들의 생가가 모여 있다. 윤세복, 손일민, 황상규, 김대지, 김원봉, 김병환, 윤치형, 고인덕, 윤세주, 강인수, 권잠술, 홍재문, 전홍표, 이장수 등이 기록돼 있다.

하천변 집들의 벽면에 새겨 남긴 태극기 역사,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역사 등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밀양 3·13만세운동 독립선언서 제작 청동상과 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 의열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옆에 의열기념관이 있다. 한쪽 벽에 '기억은 산자의 의무다'라는 문구와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이 크게 걸려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1898~1958) 생가터에 지어져 2018년 3월 문을 연 기념관은 연표와 지도 등으로 의열투쟁을 자세히 소개한다. △왜놈을 몰아낸다 △조국을 되찾는다 △계급을 없앤다 △토지를 고루 나눈다 등 의열단 최고 이상 4개 항목처럼 지금도 유효한 구호가 가득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김원봉의 말이 적혀 있다.

기념관에서 나와 윤세주(1901~1942)의 호를 딴 석정로를 타고 1㎞ 남짓 밀성중·고교 방향으로 달렸다. 밀양대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정면으로 밀양아리랑아트센터와 밀양아리랑대공원이 보인다. 밀양시립박물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도 옆에 있다.

2008년 6월 개관한 독립운동기념관 앞에서 자전거를 멈췄다. 밀양 출신 독립투사 36명의 흉상이 둥그렇게 서 있다. 한 발 한 발 옮겨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 본다. 비록 추모동상이지만, 독립투사들의 눈빛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 밀양 평밭마을 주차장에 있는 '사랑방' 컨테이너. /서동진 기자
▲ 밀양 평밭마을 주차장에 있는 '사랑방' 컨테이너. /서동진 기자

◇밀양강과 어우러진 풍경

다시 페달을 굴려 밀양대공원로를 타고 1.5㎞가량 내려왔다. 오른쪽 용평로를 따라 작은 고갯길을 오르면, 복원된 밀양읍성 동문을 통과한다. 자전거로는 가지 못하지만, 성곽을 따라 짧게나마 걸어서 산책할 수 있다. 내려가는 길에 '별달 굽이길'이라는 조형물을 만났다. 내일동 문화예술마을인데, 청년 예술인들이 마음을 모아 도심 산복도로 주변에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골목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을 만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길은 밀양관아지로 연결된다. 조선시대 밀양부 관아인데, 2010년 4월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밀양에 왔으면 영남루를 빠뜨리고 돌아갈 수는 없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라고 말하는데, 일단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영남루에 서봐야 한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밀양강의 정취가 그 명성을 실감하게 한다.

영남루에서 중앙로를 타고 밀양교와 용두교를 차례대로 건너면 가곡동이 나온다. 다리 아래에 있는 용두교유원지를 자전거로 누벼도 괜찮지만, 왕복 2차로에 작은 상가가 밀집해 옛 도심 운치가 있는 가곡동으로 들어갔다. 650m만 가면 카페 밀양을 만날 수 있다. 영화 <밀양>(2007)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살던 집과 피아노학원 세트장을 다시 꾸민 카페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도연방과 송강호방 등이 있고, 작은 마당에는 꽃 화분이 가득했다. 시 보조금으로 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음료가 비싸지 않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이다.

카페에서 목을 축이고 좀전에 건너왔던 삼문동으로 되돌아갔다. 6㎞가량 되는 동그란 수변공원길을 달렸다. 강 둔치에 조성된 시민화단, 장미원, 송림, 한국의 암각화 조각공원 등이 눈길을 붙들었다. 모래와 자갈 등이 쌓여 만들어진 하중도와 6~9월 가지 끝에 붉은빛 자주색 꽃이 달리는 개여뀌도 볼거리였다. 귀갓길 라디오에서 한 사연을 들었다. 사연을 보낸 이는 '기억의 곳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주 맑았던 이날 하루를 저장해두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공감이 돼 고개를 끄덕였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영남루: 밀양 하면 영남루(보물 제147호)를 빼놓을 수 없다. 널따란 마루 앞에 펼쳐진 밀양강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조선시대부터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명루로 불렸다. 신라 경덕왕 때 이 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이었고, 고려 공민왕 때 밀양 부사 김주가 다락을 높게 올렸다고 한다. 영남루 옆에 자리한 천진궁도 둘러볼 만하다. 정면에는 단군 영정, 양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신라·백제·발해·조선 시조들의 위패가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찾아 역사 이야기를 자연스레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의열기념관: 밀양은 항일운동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영남루 부근 내이동 의열기념관에서 독립운동의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의열기념관 1층에는 밀양의 독립운동사와 의열단 정신, 2층에는 의열단 창립 주역들의 사진과 활동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의열기념관 앞 해천 일대 산책로에는 항일운동 테마거리를 조성해놓았다. 독립운동가들의 모습과 당시 상황을 산뜻한 벽화로 그려놓았다.

위양지: 밀양시 부북면에는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찍기 명소로 떠오른 위양지가 있다. 연못 둘레길에는 이팝나무, 왕버드나무, 소나무가 울창해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선사한다. 30분~1시간 정도면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밀양 돼지국밥: 자전거유람단은 밀양아리랑시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삶은 돼지 앞다리살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국밥에 담아준다. 배가 많이 고팠는데도 한 그릇을 겨우 비웠을 정도로 양이 많다. 푸짐한 인심만큼 맛도 좋다. 특히 진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알맞게 미리 간을 해서 나와 새우젓이나 소금을 따로 칠 필요가 없다.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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