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초등학교 역사 시간,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였다.

"이 동상의 곱슬머리와 매부리코, 턱수염은 통일 신라가 서역인과 교류했음을 보여주고…."

그 말에 내가 질문했다.

"선생님! 왜 곱슬머리가 외국인이라는 증거예요?"

"그거야 동양에는 곱슬머리가 적잖니."

곱슬머리가 적다니?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 친구들은 모두 곧게 뻗은 생머리였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파마한 머릿결이었다. 누구도 나처럼 복슬복슬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지니진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곱슬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리를 묶었을 때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잔머리가 눈에 거슬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단정하지 않은 모양새가 싫어졌고, 남들과 다른 머리카락을 가진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대처방안으로 '물 묻히기'를 선택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물과 만나면 곧게 퍼졌다. 하지만 한계는 바로 찾아왔다.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구불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화장실에 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요즘 머리가 차분하던데, 오늘은 아니네."

나는 그 말에 내심 뿌듯해하며 말했다.

"맞아. 많이 이상한가?"

"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나아. 요근래 머리는 조금 이상했어…."

그 말을 듣자 이유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머리에 물을 묻히지 않았다. 머리카락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곱슬머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그라지는 듯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건 엄마의 제안이었다.

"너도 이제 중학생인데 머리는 단정해야 하지 않겠어? 미용실에 가서 매직해볼래?"

나는 그때 매직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매직은 말 그대로 마법 같았다. 머리를 쫙쫙 펴주다니! 엄마는 계속해서 날 설득했다. 엄마랑 이모도 곱슬머린데 늘 매직을 한다느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면 된다느니, 중학교에서는 단정한 머리여야 한다느니…. 내심 곧게 뻗은 머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제안을 수락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설렘을 주는 이름과 달리, 매직은 무척 지루했다. 나는 장장 5시간 동안 꿈쩍 않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설렘과 호기심에 말똥거리던 눈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져만 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막바지 무렵이었다. 머리를 씻고 고데기만 하면 끝이었다. 나는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거울 속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데기를 하면 할수록 내 표정은 굳어져 갔다. 매직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대성공이었다. 12년간 봐온 내 머리카락 중에서 가장 반듯했다. 내 표정이 굳은 이유는 간단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나 같지 않았다! 반듯한 머리카락을 가진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낙심한 나를 보고 엄마는 아주 멋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도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뭐가 멋지다는 말인가. 다음에는 매직 같은 거 쳐다보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반년 뒤 나는 또다시 미용실에서 지루한 5시간을 보냈다. 뿌리만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도무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매직을 했다. 일 년에 두 번씩, 매직은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일상에 변화가 생긴 건 놀라울 만큼 사소한 순간부터였다. 나는 머리를 말리던 중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했다. 아무리 매직을 해도 머리는 계속 구불거려지고, 복슬거리는 머리는 계속 자라난다. 마치 "넌 원래 곱슬머리잖아"라고 말하는 듯 계속 계속 자라난다.

순간 모든 게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맨날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5시간 동안 멍하니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내가, 다시 자라날 곱슬머리를 없애기 위해 들이는 돈이, 펴도 펴도 계속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억지로 펴는 모든 과정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초등학생 시절 머리에 물을 묻혔던 기억을 떠올렸다.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홧홧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무엇이 다른가? 조금 더 오래가는 물 묻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느꼈던, 이유 모를 부끄러움의 까닭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노력을 부정당했다거나, 이상하다고 평가당해서라거나, 마음속 약점을 찔려서,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곱슬머리를 미워했다. 그것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또 감춰지지도 않을 걸 감추려고 했고, 금방 들통이 났다.

엄마에게 이제 매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충동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엄마는 뜬금없이 말을 뱉는 날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이 부끄럽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처럼 이유 모를 부끄러움 따윈 없었다. 나는 부끄러움의 이유를 안다. 진정한 부끄러움은 남이 자신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내가 자신을 부정할 때 생긴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매직을 하지 않는다. 비가 올 때면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뻗는 잔머리도, 머리를 말리며 폭탄 맞은 듯 부푸는 머리도, 제각기 방향으로 뻗치는 머리카락도, 아무렴 어떤가. 더는 싫지도 부끄럽지도, 밉지도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 동글동글한 물결을 만드는 곱슬머리가,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준 곱슬머리가, 내 삶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들어준 곱슬머리가 좋다. 나는 이제 내가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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