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인 것 같다. 이별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4월 24일 평범한 아침이라고 치기엔 어머니의 폰엔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짐으로 가득 찬 캐리어. 어머니 혼자 계시지만 시끌벅적한 주방까지 난 그때 직감할 수 있었다. '아,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시구나.' 금요일에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도저히 갈 몸이 아니시라고 어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듯했다. '얼마나 편찮으시길래…' 이 생각을 하며 주방에 가 어머니의 눈을 마주쳤다.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씻고 나오라는 말씀부터 하셨고 어쩔 수 없이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들이 짧은 몇 초 동안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화장대 앞에 섰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말렸다. 다른 것은 불안한 나의 마음과 그 불안감을 대신하듯이 이유 없이 맺히는 눈물밖에 없었다. 여전히 어머니께선 전화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꺼내준 옷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칙칙한 옷이었다. 그 옷에서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짐이 가득 찬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어머니의 차로 이동했다. 어머니는 우릴 진정시키려고 하시는 건지 음악을 틀라고 하셨다. 오빠가 정한 노래 들으며 걱정은 잠시 내 바지 주머니 속 깊숙이 넣어두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SG워너비의 살다가를 듣다 어머니의 투명한 눈물을 보았다. 난 그다지 슬프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눈물 하나에 나까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하나로 불안감이 하나하나 떠오름과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들도 같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목욕탕을 갔었던 기억, 주남저수지에 가서 다 같이 놀았던 기억, 가장 가슴이 시큰거리는 것은, 왜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이다. 왜 할머니껜 그렇게 안기고 애교 부리면서 도대체 할아버지껜 왜 한 번 안아드리지 못하였을까. 그 흔한 뽀뽀 한 번 못 해드렸을까, 왜 할아버지 손이라도 한 번 더 안 만져드렸을까, 왜 폰만 보고 있었을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 했을까. 너무 죄송한 마음밖에 안 들었다. 내가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이었고, 너무나도 아픈 가슴은 날 놓아주지 않았다. 왜 이제야 후회를 하고 있고 왜 생각했던 걸 실천하지 못했을까, 난 과연 좋은 손녀였을까. 너무 죄송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많은 생각이 날 괴롭히는 동안 이모 댁에 도착했다. 다행이었다. 이모께선 한결 편안한 표정을 하고 계셔서 해탈한 거일지는 몰라도 난 이모의 편안한 표정을 보고 나도 편안했다.

기다리고 싶진 않았지만 받기도 싫었던 요양 병원에서의 전화가 이모 폰에 걸려왔다. 임종 직전이시라고,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금요일에 우리 집에 안 오셔서 밉기도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임종 직전이라니 그래도 난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할머니, 엄마, 이모, 큰 외삼촌, 작은 외삼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른 겉옷을 입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할머니 댁 문을 열면 처음 보는 할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늘 웃으시며 우리를 반겨주시던 할머니께서 주저앉아 우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전에도 그랬듯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울었다. 혼란스러움에 어리지만 나라도 울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슬픔 눈물까지 모두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그렇게 내 슬픔을 눌러 담다 보면 이젠 장례식장으로 갔다. 혹시나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너무 떨렸다. 딴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떨다 보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내가 늦어서 폐가 될까 봐. 그렇게 할머니 뒤를 쫓다 보면 하얀색 옷에다 요양병원 이름이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편안히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보았다. 그 표정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할아버지께서 편안한 표정을 지으시는 것도 처음이었다. 늘 인상만 쓰시고 계셨는데, 그래서 더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지금이라도 편안한 표정을 짓고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눈도 못 감고 계셨단 말에 할아버지의 눈을 어루만지시다 우셨다. 난 안 울려 했다. 그렇지만 이내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내 몸이 반응하며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르다 보면 마스크를 적시고 눈 주위는 빨갛게 변해있다.

할아버지 얼굴은 봤지만 만지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어서 하얀 천에 덮여있는 할아버지의 발을 늦었지만 늦게라도 마사지하듯 만졌다. 안마 의자에 앉아 계셨을 때 폰 보지 말고 두 손으로 주물러 드릴걸, 할머니 발 마사지하듯 할걸 또 후회가 파도 밀려오듯 밀려왔다. 모두 자책이었다. 자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 죄송했다. 사랑한단 말도 해드린 기억 하나 없는데 이제 와서 후회를 한다니 나 자신이 참 참 멍청해 보였다. 왜 그깟 실천 하나 못 해서 이렇게 후회를 할까 싶었다. 할아버지 발은 늘 따뜻했는데, 그때만큼은 차가웠다. 아주 미약한 나의 온기가 나한테 전해지는 것밖에 몸에 온기는 없었다, 그걸 알지만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검은색 한복, 리본 핀. 드라마에서만 보던 옷과 장소 그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모두 갈아입고 할아버지 영정사진 앞에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때 영정사진에 할아버지는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계셨고 멋있게 정장도 차려입고 계셨다. 예쁜 꽃과 먹음직스러운 과일, 반찬들 그것만으로도 난 마음이 놓였다. 할아버지께서 너무 편찮으셔서 밥도 못 넘기셨는데 이젠 맛있게 드실 것 같아서. 드시는 걸 보여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틀을 넘기고 이제 할아버지를 진짜 보내드릴 때가 왔다. 영정사진 그대로 그리고 밝은 나무색의 관에 꽃과 함께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이번엔 만지진 못했다.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시야를 가리는 눈물조차 미웠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멋있는 우리 할아버지를 편안해 보이는 우리 할아버지를 내게 무뚝뚝하지만 늘 우리 서연이 하며 불러주시고 이렇게 큰 손녀가 상 하나 못 접어서 쩔쩔매고 있을 때 아픈 몸 이끌고 상도 직접 접어주시고 우리 서연이 하며 정말 착하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한참 살 뺐었을 때도 지금 예쁘다고 해주셨던 할아버지. 그리고 손에 힘도 안 들어가시면서 마지막 용돈이라며 떨리는 손으로 주셨을 때까지.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보물 같은 할아버지. 예상했던 이별이었지만, 이젠 관에 들어가 긴 리무진을 타고 손녀 손자들 좋은 버스 태워주시고, 조화도 복도를 다 채울 만큼 받으시고 할아버지는 참 행복하시겠다. 티비에 나오는 고인 명단에도 손녀 손자들로 꽉 차서. 지금 너무 호화롭게 누리며 가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보잘것없는 저에게 사랑 듬뿍 주시고 나쁜 말 한 번 안 하시고 칭찬만 해주셔서 다음 생에도 할아버지 손녀로 태어나고 싶어요. 다음 생엔 할아버지께서 안 아프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 번도 따뜻하게 못 안아드려서 죄송하고 하늘에서 부디 절 기다려주세요. 그땐 안아드리고 뽀뽀도 해드릴게요. 칭찬도 제가 더 많이 해드리고 할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라일락 꽃도 따다 드릴게요. 너무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딸 우리 엄마 꼭 호강시켜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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