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로 일하다 귀향해 연구·교육·프로젝트 등 진행
폐조선소 공간 활용 전시 개최·조선노동자 심리 치료도 지원
자연친화적 치유 콘텐츠 구상…체류형 관광 모델 준비 박차

# 거제는 섬 전체가 관광지라 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검푸른 바다와 오밀조밀 다양한 섬들이 조화를 이뤄 남해 바다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해양성 난대기후에 속해 동부면 구천리 국유림에는 수백 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 거제는 대표적인 조선도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에 속하는 양대 조선소가 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시절 '돈이 마르지 않는 도시'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두 얼굴의 도시 거제도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로컬크리에이터(지역가치창업가)가 있다. 거제의 자연과 문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매진 중인 로컬디자인 섬°(섬도) 김은주(33) 대표를 만났다.

거제시 동부면 구천1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통나무로 지은 핀란드식 펜션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김 대표의 둥지다. 부모님이 펜션으로 운영하던 곳을 김 대표가 물려받아 사무실 겸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거제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10대 시절 고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울산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그림공부를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문화기획 분야에 관심을 둬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김은주 거제 로컬디자인 섬도 대표. 그는 거제 자연·문화를 기반으로 지역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주찬우 기자
▲ 김은주 거제 로컬디자인 섬도 대표. 그는 거제 자연·문화를 기반으로 지역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주찬우 기자

문화기획자로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사업에 참여했던 그는 201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작가로서 개인전과 프로젝트를 준비하다 고향에서 그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부모님의 제안을 받아 거제로 오게 됐죠."

고향에 온 김 대표는 그간 경험을 살려 문화기획, 관광콘텐츠 개발, 교육 등을 주제로 한 디자인섬도를 그해 4월 설립했다. 섬도는 거제도의 지역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인 기업으로 창업했다 디자이너 1명과 동행하고 있다. 섬도는 산림청의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섬도는 거제도의 환경,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개발하고 시민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예술 △지역연구 △지역교육 △투어리즘 등이 주된 콘텐츠다.

▲ 거제 섬도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섬도
▲ 거제 섬도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섬도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하는 일은 막노동에 가까워요. 운전부터 짐운반, 페인트칠, 행사 후 뒤처리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어요"라며 "그동안 자치단체 보조사업에 참여해 인건비 등을 충당해왔지만 앞으로는 자체 수익모델을 개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귀향을 알렸다.

여러 프로젝트에는 거제 조선노동자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소 밥을 먹은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이 컸다. 특히, 그는 육체 노동자를 의미하는 블루칼라 직업에 애정이 깊다.

지난해 '블루칼라의 정원'을 통해 거제의 자연과 마을공동체의 협력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실험을 하기도 했다.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위해 식물(원예)을 이용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11월에는 조선업과 산업 침체에 따른 지역의 변화에 주목한 기획전시 '첫 번째 파도'전을 열었다. 전시회는 폐조선소에서 열린 첫 번째 현대미술 전시로 큰 관심을 받았다.

▲ 조선업 노동자를 위한 식물(원예)을 이용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 /섬도
▲ 조선업 노동자를 위한 식물(원예)을 이용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 /섬도

김 대표는 당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조선산업이 어려워지면서 거제 경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선업과 종사자들이 겪는 내밀한 얘기를 지역 안에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조선산업 경기가 어려워진 시점에서 경기를 상승세로 돌리는 건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비어가는 공간들을 앞으로 어떻게 채울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보고자 전시를 열었다"고 말했다.

올 6월에 경력단절여성과 이주노동자, 미등록아동 캠프도 진행할 계획이다. 자연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도모하는 내용이다.

최근 김 대표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 개념으로, 생명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필리아(Philia)'의 합성어다.

김 대표는 "활력을 잃은 사람들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자연적인 요소를 심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폐조선소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시 '첫 번째 파도'전.  /섬도
▲ 지난해 11월 폐조선소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시 '첫 번째 파도'전. /섬도

섬도는 자연친화적 체류형 관광 모델 '블루칼라의 정원'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목조건물 객실을 새롭게 단장하고, 인근에 몸과 마음을 치유할 자연 정원을 꾸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김 대표는 "거제는 난대성 기후로 형성된 섬의 자연환경과 조선산업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 도시지만 지역 문화 콘텐츠는 인근 통영보다 빈약했다"며 "지역 자원을 활용한 여행 콘텐츠부터 원예치료, 치유농장(케어팜) 등을 꾸준히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블루칼라의 정원(바이오필리아 센터)을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공간으로 꾸미는 게 목표"라며 "단순하게 쉬면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벗어나 거제라는 섬의 온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고향 거제의 더 나은 내일을 찾아나선 젊은 크리에이터의 열정에서 거제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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