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오르막 오르는 재활용 여정
어머니의 삶 그 자체로 묵묵한 환경운동

그것은 낡고 오래된 상이었다. 어른 넷, 아이 셋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상. 된장찌개와 생선과 나물, 일곱 개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함께 올라와도 상다리는 끄떡없었다.

시어머니는 처음 상을 폈을 때, 쑥스럽게 말했다. "누구는 이렇게 칠이 다 벗겨졌다고 버리라고 해도, 아직 쓸 만한데 뭐." "그러게요, 어머니. 아직 튼튼한데" 하고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상이 얼마나 한다고 바꿀 수도 있는 일 아닐까, 생각했다. 나뭇결이 다 일어난 표면에는 길게 유리 테이프가 붙었고, 그마저도 세월 따라 노랗게 변색되었다. 어린 조카들은 테이프를 따라 스티커를 붙여 두기도 했다. 웬만하면 바뀔 것 같지 않던 상이 최근 바뀌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새로운 상을 가져온 무용담을 털어놨고, 나는 귀를 기울였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쉽게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새 조미료가 몇십 봉지씩 버려져 있고, 아직도 쓸 만한 밥솥과 멀쩡한 그릇이 쓰레기가 되었다. 그걸 그대로 버리기 아까웠던 어머니와 동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게 있으면 골라 가져가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멀쩡한 상이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을 발견했다. 집에 있는 낡은 상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루만 지나면 쓰레기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질 아까운 물건. 어머니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상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문제였다.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던 어머니였다. 결국 택시를 불러 상을 싣고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손을 저었다. "에이, 지하철 타면 금방인데.", "좀만 걸으면 되는데 택시비 아끼라."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그만 용기를 얻고 말았다. 자신의 허리만큼 오는 커다란 상을 직접 집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옮기기로 결정했다.

근무지에서 집까지는 30분이 걸렸다. 큰 상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무겁고 성가시고 곤혹스러웠다. 걷는 데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평일 낮 지하철은 빈 좌석이 있어 앉아 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몇 개의 지하철역을 지나 동네에 도착했지만 '까꼬막'이라 불리는 높은 지대를 걸어 올라야만 집이 나왔다. 그냥 걸어 올라가기만 해도 숨이 차는데 상을 들고 어떻게 옮길 것인가.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을 불러냈다. 배턴 터치였다. 힘겹게 상을 들고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졌던 옛날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가방에서 머플러를 꺼내 동그랗게 똬리를 만들어 머리에 얹고 그 위에 상을 올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아파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30분의 불편한 여정 끝에 거실에는 누가 봐도 번듯한 상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새로운 상에 꼼꼼하게 니스 칠까지 했다. 마치 시장에서 7만 원씩은 주고 산 새 상 같아 보였다.

어머니는 버려진 상을 가져온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나라면 쉽게 버리고 더 쉽게 사버렸을 일을 어머니는 다른 방법으로 '가져왔다'. 환경 문제가 늘 이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대중교통으로 상을 옮기는 일처럼 불편하고,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시간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버린 상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까지 옮기고, 일회용 팩을 헹궈 재사용하고, 물건을 살 때는 몇십 번을 고민하는 어머니의 삶은 그대로 묵묵한 환경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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