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차 방문한 하동에 매료돼 관광 기획 1인 기업 설립·정착
친구 같은 현지 청년 안내 등 뻔하지 않은 콘텐츠 고객 호응

'로컬크리에이터'(지역가치창업가)는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적 자산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를 일컫는다. 경남도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지난해부터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지역가치창업가를 발굴·육성해오고 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사업을 맡고 있다. 지난해 경남에서는 5개 팀이 차별화된 멘토링, 사업화 자금 등 프로그램을 지원받았다. 경남 각지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크리에이터 두 팀을 만나봤다.

최지환(33) 하동 두리하루 대표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고 매력을 느껴온 축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3년 전 관광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에 입사한 그는 관광콘텐츠 개발과 축제기획 업무를 했다.

대관령 눈꽃축제, 평창 더위사냥축제, 평창 백일홍축제 등은 그가 총감독을 맡아 진행한 행사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을축제 기획을 총괄하던 그는 관광을 주제로 한 스타트업을 해보자고 결심해 지난해 하동으로 이사했다. 주위에선 걱정도 많았다. 차라리 집에서 가까운 강원 평창에서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운이 좋게 어린 나이에 좋은 직책을 맡긴 했지만, 윗분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행사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면서 "학창시절부터 그려왔던 멋진 축제 감독이 아닌 것 같아 과감히 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하동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을까? 그는 업무차 방문한 하동에서 지역 청년과 마을주민을 알게 됐고, 빼어난 자연경관에 매료돼 하동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지역에는 사실 플레이어(경쟁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강원도에는 이미 깃발을 꽂은 분들이 많아 경쟁이 덜 치열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며 "그런 점도 분명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동네 어르신들의 진심 어린 제안에 하동행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 최지환(왼쪽에서 둘째) 하동 두리하루 대표가 '길나장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에게 하동의 자연 경관을 소개하고 있다.  /최지환 대표
▲ 최지환(왼쪽에서 둘째) 하동 두리하루 대표가 '길나장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에게 하동의 자연 경관을 소개하고 있다. /최지환 대표

지난해 5월 하동읍에 작은 원룸을 얻어 사무실 겸 숙소로 쓰며 일을 시작했다. 하동을 찾는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애초 '플레이플래닝'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마을주민이 설립한 힐링여행사 '두리하루'를 인수해 1인 기업 대표가 됐다. 두리하루는 '둘이서 하루를 보낸다'는 뜻이다.

지금은 악양면에 지인이 빌려준 집을 사무실과 주거공간으로 쓰고 있다. 이웃 주민들이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할 정도로 안착하고 있다.

최 대표는 "하동 주민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서울 촌놈이 하동에서 뭔가 해보려고 한다는 걸 기특하게 생각해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작한 첫 프로젝트는 여행 플랫폼이었다. 출시한 여행상품 브랜드는 '길나장이'였다. 친구 같은 현지 청년가이드가 전해주는 여행, 교통, 숙박, 맛집 등을 걱정할 필요 없이 즐기는 여행을 콘셉트로 잡았다. 온라인으로 1박 2일 여행을 신청하면 마중부터 숙박, 여행까지 모두 책임지는 방식이다. 현지 청년들이 안내를 담당했다.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아는 현지인이 여행객에게는 생소한 지역 명소와 먹을거리를 소개해 만족도가 높다. 첫 번째 손님을 잊지 못한다. "6월에 첫 손님이 오셨는데, 정산을 해보니 제 돈을 30만 원이나 더 썼더라고요.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무조건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총 11회에 걸쳐 행사를 진행했다. 최 대표의 플랫폼을 통해 하동에 다녀간 이는 총 50명에 이른다. 하지만 플랫폼과는 이별했다. 렌터카로 여행자를 직접 태워오는 방식은 현행법상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가 되자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이미 여행을 다녀간 분들에게도 돈을 돌려줬다.

최 대표는 "이 문제로 모든 걸 잃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아 금전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해결하는 게 맞다 싶었다"고 말했다.

▲ 최지환 하동 두리하루 대표는
▲ 최지환 하동 두리하루 대표는 "하동을 찾은 관광객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선물하겠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최 대표가 로컬크리에이어를 상징하는 동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주찬우 기자

최 대표는 올해부터 새로운 여행 플랫폼(길나장이 스테이)을 구상하고 있다. 숙소를 기반으로 소규모 이벤트를 열어주는 생활여행 방식이다. 이를 위해 최 대표는 계절마다 바뀌는 하동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빼곡하게 정리하고 있다. 4월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야생 해차 수확이 한창이라는 식이다.

숙소를 찾아준 여행객에게 그 시기에 맞는 규격화하지 않은 체험거리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규격화된 상품으로는 재방문 유도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하동 하면 최참판댁, 쌍계사, 화개장터 등 알려진 명소 외에도 매력 있는 장소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난다"며 "계절마다 바뀌는 하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일을 하면서 공간 마련에 힘쓰고 있다. 손수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혹여 마음이 떠날까 싶어서다. 땅을 사서 건물도 지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지만 뚜벅뚜벅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그동안 1인 기업이라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했지만 로컬크리에이터 사업을 통해 체계적인 교육과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어 좋았다"며 "로컬크리에이터 동판을 선물 받고는 국가에서 나를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 지역에 있는 다른 창업가와의 네트워킹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을 물었다. "축제 일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마음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죠. 많은 축제 기획자들이 느끼는 거지만 관광객들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하동을 찾은 여행객에게 설렘과 즐거움을 선물하겠다는 젊은 청년의 진지한 도전이 멈추지 않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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