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시달리는 10대 첸니엔
어른들은 죽도록 공부해라 억압
경찰, 학폭 피해자 되레 다그쳐
입시주의 폐해 적나라하게 표현

영화 시작 전부터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화면에 띄워졌다.

'학교 폭력은 바로 여러분 곁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힘이 되길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길 바랍니다.'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폭력, 입시경쟁,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10대 첸니엔(저우동위)과 베이(이양치엔시)가 주인공이다.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고통받는 세상, 명문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는 교사, 자신의 방식대로 보고 해석하는 어른. 이 모든 게 씁쓸하면서도 정곡을 찔러 더 가슴 아픈, 하지만 그냥 이렇게 사회가 흘러가면 안 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첸니엔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베이징대 합격만이 자신이 놓인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다며 친구 하나 없이 공부에만 몰두한다. "엄마가 너 많이 고생시켰지만 조금만 참아. 너 대학 졸업하면 우린 지옥 탈출이다.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그러던 어느 날 첸니엔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던 후 샤오디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원인은 학교폭력. 첸니엔은 "한 달만 참아 베이징으로 떠나면 돼. 걔는 너무 약했어. 애들한테 당한 걸 못 참은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걔만 약한 게 아니야. 너와 나도 마찬가지라고"라며 경찰에게 학교폭력을 증언한다.

하지만 용기를 낸 첸니엔에게 "네가 경찰한테 나불댔다"며 또 다른 폭력이 돌아온다. 학교도, 경찰도 형식적인 선에서 마무리한다. 경찰은 첸니엔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엄마는 나이 들면 좋은 게 있대요. 잘 잊어버린다고 결국 다 잊을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어른 되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 주네요"라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 10대 첸니엔(오른쪽)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베이는 그런 그를 곁에서 도와준다. 괴롭힘을 당하다 머리카락이 잘린 첸니엔을 본 베이는 묵묵히 자신의 머리도 삭발한다. /스틸컷
▲ 10대 첸니엔(오른쪽)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베이는 그런 그를 곁에서 도와준다. 괴롭힘을 당하다 머리카락이 잘린 첸니엔을 본 베이는 묵묵히 자신의 머리도 삭발한다. /스틸컷

학교폭력을 당하는 첸니엔을 도와주는 이는 베이다. 베이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 뒷골목에서 싸움질을 하며 지낸다. 그들은 서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한다. 대학시험을 얼마 앞두고 첸니엔은 베이가 없는 사이 친구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다. 첸니엔은 머리카락이 잘려서 베이에게 오고 그 모습을 본 베이는 묵묵히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머리를 삭발한다.

영화는 학교폭력과 함께 끊임없이 입시주의, 경쟁주의를 부추기는 현실을 그린다. "시험 떨어지면 웃지도 못해. 지금 너희 성적이 미래의 사회적 지위를 확정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 못하면 사는 게 힘들다. 나중에 잘 살려면 죽도록 공부해."

경찰은 왜 학교폭력을 어른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피해자를 다그친다. 이때 첸니엔은 일침을 가한다. "괴롭힘 당한 게 제 잘못인가요? 누가 나를 도와줘요? 그때 촬영한 사람? 구경꾼? 그렇게 당한 건 내 탓이라고 손가락질한 사람? 다들 복수가 당연한 거로 생각하는데 대입 시험 때문에 꾹 참고 견디는 거 그건 잘못인가요? 그게 이 세상 원리라면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으세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말했다. "불행한 인간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갖고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의 여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 있다."

이 영화의 영어 부제(Better Days·좋은 날)처럼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타인의 아픔을, 불행을, 슬픔을 보고 살피는 인간다움이 필요하다.

'나한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말해봤자 뭐가 바뀌겠어?'라는 생각은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다른 사람은 별일 아닌 것처럼 자신을 스쳐 지나간다. 이전에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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