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놀 나이에 변을 당한 적이 있다. 고약한 냄새가 물큰한 단 하루의 기억…. 하굣길이었다. 일순간 한쪽 다리 근육만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뚜껑 열린 하수구에 한쪽 다리가 빠진 것이다. 몸을 추스르고 보니 묽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었다.

출근길에 흰 지팡이를 쥔 시각장애인을 보았다. 인도 사정이 좋지 않아 보행하는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유년시절 그날 기억이 스쳤다. 시각장애인에게 물어봤다. 송치진(63) 씨는 특히 횡단보도에서 혼비백산한다고 했다. 음향신호기를 이용해 제때 길을 건너더라도 말이다. 성미 급한 운전자가 많은 탓에 도로 한복판에서 차 소리가 섞여 혼란에 빠질 때가 많다고 했다.

개인이 자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비자발적 위험은 사고 확률과 무관하게 공포를 배가한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에게 횡단보도는 늘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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