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휴학하고 충북 옥천행 지역신문 인턴기자로 활동 중
"서울로"외치는 사회 분위기 '지역 소멸'걱정하는 건 모순
취업 압박 가장 부담스럽지만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한 삶 있어
20대 도구화·대상화 그만두고 제 목소리 내는 환경 만들어야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MZ세대(1980∼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 언론이 그리는 요즘 20∼30대 모습 하나입니다. 한 문장으로 한 세대를 정의한다니,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날것 그대로 20대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신 삶은 시속 몇 ㎞인가요'라고 물었고 모두 44명이 응답했습니다. 각기 다른 속도로 달리는 세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옥천신문> 인턴 기자 이원재(26) 씨입니다.

▲ 이원재 씨가 대구시 중구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원재 씨
▲ 이원재 씨가 대구시 중구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원재 씨

김해에서 자라 진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원재 씨 삶은 시속 50㎞입니다. 실제 초보 운전자라서 아직 불안하고, 다른 운전자 눈치도 보고, 속도를 내기엔 겁도 나는 것이 꼭 지금 삶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생각해본 주제가 아니라서 무슨 기준으로 측정할지 고민도 했고, 주변 친구와 비교도 해봤어요. 어떤 친구는 빠르게 일을 해나가는 것 같고, 다른 친구는 조금 더디게 가는 것 같고, 저는 그 중간 즈음인 것 같아요."

오는 8월 졸업을 앞두고 휴학을 신청한 원재 씨는 지난달 경남을 벗어나 충북 옥천으로 향했습니다.

"옥천신문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고 있어요. 훌륭한 지역신문이라고 들어서 새롭게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고, 운 좋게 붙었어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가장 어려운 결정은 오롯이 원재 씨 몫이었습니다.

"우선 졸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인턴 경험을 쌓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였는데요. 졸업부터 빨리하기를 바라는 주변 시선도 있었고, 인턴 경험만 계속 쌓고 취업을 안 하는 스스로 자격지심도 느꼈어요.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고 지인에게 말을 했는데 그 선택이 맞으리라고 지지를 해줬어요."

낯선 곳에서 한 달가량을 보낸 원재 씨. 어려운 점도 있지만 속도를 서서히 높여보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 지역에서 나고 자란 지역 사람이고요. 서울이 아니라도 잘 산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옥천으로 간다는 말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걱정이 없었고, 사람 사는 곳이니까 배울 게 많다면 얼마든지 가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더 멀리 있는, 낯설고 아주 치열한 땅인 서울에는 잘만 가면서 옥천을 못 갈 이유가 있나요?"

지역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레 '지역 소멸'도 화제에 올랐습니다. 원재 씨는 모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역 고등학생이 서울지역 대학에 입학하면 현수막 걸고, 박수 쳐주잖아요. 서울로 사람을 계속 보내려고 하면서 지역 소멸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에요. 사람, 문화, 인프라 모두 중요하지만 사회적 분위기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원재 씨에게 'MZ세대'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었습니다.

"규정짓는 말이죠. 자신을 스스로 표현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를 쉽게 규정짓고 쉽게 판단하고 소비하는 것이 불만이에요."

"MZ세대에게 '가상화폐'는 희망"이라는 어느 기사 속 문장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관심이 많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담아내는 관점이 잘못됐다고 봐요. 남들 다하는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관심이 없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청년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희망 없는', '좌절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것도 불편하더라고요. 청년을 소비하는 행위 하나로 받아들여요."

취업이 힘든 세대라는 점은 원재 씨도 수긍했습니다.

"아무래도 스펙을 다들 많이 쌓는데 그래서 다 비슷하고, 돋보이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찾기 어렵죠. 채용도 조금 더 활발하면 좋겠고요. 아무래도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부담이에요."

하지만 '선택적 사실'만으로 20대를 그리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이전 세대보다 경쟁이 치열한 것도 사실이고,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데 취업도 정말 힘들고, 가정을 꾸리기도 어렵고, 육아도 힘들고, 집 사기도 힘들고….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부정적으로 그리고는 '항상 분노에 차있는 20대'라고 보여주는 건 바람직하지 못해요. 저는 집 못 사고, 차 못 사고, 당장 취업을 못해도 행복하거든요. 혐오하고, 분노하고,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만 그리니까 불만족스러워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MZ세대"라는 표현도 뜯어봤습니다.

"충분히 숙고하고 꼭 말해야 할 때 말을 하는데 기성세대는 즉흥적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이전 세대랑 우리 세대는 감수성에 차이가 있어요. 기성세대는 '까라면 까' 식 관계에 익숙하다면, 지금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조직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아무 말이나 한다는 뜻이 아닌데 쉽게 판단하는 것 같아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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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삶의 속도는 시속 50㎞입니다."

'좋은 기자'가 목표라는 원재 씨. 젠더 갈등을 예로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을 비판했습니다.

"뉴스가 20대 남성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자극을 하는 거죠. 20대 남성 관점에서 계속 부당하다는 점을 주입하고, 자극을 받은 20대가 반응하면 다시 부풀려서 젠더 갈등 구조를 재생산하고…. 반복되는 거죠."

언론에 등장하는 20대 담론에 20대가 빠졌다는 지적도 더했습니다.

"언론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말할 때 당사자를 빼놓는 게 종종 보여요. 20대 담론을 말할 때 20대가 전면에 등장해서 말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고 봐요."

원재 씨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우선 가상화폐에 미치지도 않았고, 젠더 갈등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같이 잘 지내고 싶어요. 갈등이나 혐오, 분노보다는 같이 잘 살아가길 추구하는 사람이고요. 아무리 분노한다고 표현해도, 저는 더 대화하면서 차근차근 많은 사람과 같이 살아가려고 할 거예요. 20대를 대상화하지 말아주세요. 계속해서 분노하고 혐오하는 20대로 비추고 소비하는데, 20대도 같은 시민이고 하나의 주체란 말이에요. 아직 조금 젊다는 이유로 기성세대 권력에 눌려서 도구처럼 활용되고, 소비되는 것이 대상화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규정짓고 소비하기보다, 같이 어떻게 더 잘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20대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계속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요."

원재 씨는 어머니에게도 삶의 속도를 물었습니다. 원재 씨 어머니는 시속 100㎞라고 답했습니다. "휴게소도 안 들르고 아주 열심히 달렸다"고요. 지금도 계속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참 열심히 살고 계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달리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하고, 본인의 삶을 빠르게 달리는 게 즐겁다는 말로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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