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탓 어촌 생계 타격
지역사업비도 실질적 혜택 전무
암 등 질환 증가하고 소음 피해
이주 문제로 공동체 내 갈등도

석탄화력발전소는 크게 볼 때 기후위기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운 마을 사람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한국남부발전 하동발전본부 바로 앞에 자리한 하동군 금성면 명덕마을을 찾아 주민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들은 화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20여 년 동안 생업기반과 건강을 잃었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명덕마을은 한국남부발전 하동발전본부 바로 앞에 자리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동화력발전소 1∼8호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단순히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코앞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을 어디에서도 발전소 굴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명덕마을 주위를 둘러싼 기피시설은 화력발전소뿐만이 아니다. 발전소와 명덕마을 사이 산등성이에는 345㎸, 154㎸ 송전탑이 늘어섰다. 마을과 1.5㎞ 남짓 떨어진 곳에는 하동군 생활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500m 앞에서부터 악취가 몰려와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웠다. 악취는 풍향에 따라 마을까지 영향을 미친다.

▲ 조명주 명덕마을 이장이 하동화력발전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조명주 명덕마을 이장이 하동화력발전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창우 기자

◇생업기반 상실 = 명덕마을은 하동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민 대부분이 수산업으로 삶을 영위하던 곳이었다. 어업은 물론 김 양식도 활발히 이뤄졌다. 명덕마을 주민 전이연(67) 씨는 "한때는 통영에서 여수에 걸친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역에 들어갈 만큼 정말로 깨끗한 어장이었다"라며 "발전소가 들어설 때 마을 공동어장 약 400㏊에 대한 일부 피해보상을 받았지만, 이후 생존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다.

발전소에서 136m 떨어진 곳에 사는 이순엽(70) 씨 역시 이전에는 각종 수산물을 따는 등 어업에 종사했다. 지금은 화개에 있는 녹차밭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용주가 모는 승합차를 타고 일터에 나서지만, 수입은 예전보다 훨씬 적다. 이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조명주(62) 명덕마을 이장은 "다른 주민들은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겨우 담뱃값이나 버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명덕마을 주민들은 하동화력이 내는 발전소 주변지역사업비나 지역자원시설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하동군은 하동발전본부가 낸 주변지역사업비 30억 원을 매년 발전소 인근 5㎞ 이내에 있는 금성면·금남면·고전면에 특별회계로 배정한다. 이정욱(46) 명덕마을피해대책위원장은 "주변지역사업은 발전소 피해를 보는 마을 주민들의 소득사업으로 써야 하지만, 이마저도 농로 포장, 하천 정비 등에 쓰이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자원시설세 역시 경남도가 받아 매년 65%를 하동군에 내리지만, 마을 주민들의 생업기반에는 쓰이지 못하고 있다.

▲ 지난달 23일 밤 하동화력발전소에서 136m 떨어진 이순엽 씨 집 마당에서 바라본 발전소.  /이창우 기자
▲ 지난달 23일 밤 하동화력발전소에서 136m 떨어진 이순엽 씨 집 마당에서 바라본 발전소. /이창우 기자

◇건강권 상실 = 봄이 왔지만, 명덕마을 어디에도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정욱 위원장은 "이전에는 석탄가루가 날아와 마을 곳곳에 쌓이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라며 "지금도 빨래를 밖에다 널어 두는 집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중금속으로 시간이 갈수록 암을 비롯한 질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대책위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암에 걸린 주민만 25명이고, 사망자는 14명에 달한다. 사망자는 당시 조사 이후에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의 어머니 역시 백혈병과 비슷한 희귀질환을 앓고 있고, 형수 역시 식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그는 "나 역시 원인불명의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20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은 지난달 22일부터 직접 중금속·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했다. 광양만권 시민단체들이 하동·남해·고성·광양·여수·순천에 걸친 14개 지점에서 동시에 추진하는 조사에 명덕마을도 참여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하동화력발전소는 매번 기준치 이하의 측정결과를 내놓지만, 이를 신뢰할 수 없기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신청해서 이주요구 근거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 피해도 심각하다. 이순엽 씨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니 '우웅-우웅' 하고 나는 저주파 소음 때문에 방음창을 닫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을 주민들은 2019년 하동화력을 상대로 소음피해배상을 요구하는 환경분쟁조정을 내 지난해 배상에 합의한 바 있다. 석탄발전소 소음피해와 관련한 전국 첫 번째 배상 사례였다.

◇공동체 파괴 = 2004년 하동화력 7·8호기 증설 당시 발전소 인근에 있는 가린마을·명덕마을 이주대책이 논의됐다. 이때 가린마을 이주는 진행됐지만, 명덕마을은 불발됐다. 2018년 마을이 정보공개요청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명덕마을 대표는 주민들의 위임장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밀실에서 '이주 불가'와 '피해조사에 따른 개별보상'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에도 하동화력 측이 이주협의를 시도하려 했지만, 이러한 사실은 마을 주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한동안 명덕마을 주민 400여 명은 양쪽으로 갈려 갈등을 빚었다. 이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100여 명과 이주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주민이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이주를 찬성했던 주민들은 당시 마을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정보를 독점했고, 친·인척 관계로 얽힌 마을 주민 다수가 이들을 지지하면서 갈등과 혼란이 증폭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경남도도 현지조사를 나왔지만, 주민 여론이 반으로 갈린 상황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 위원장은 "마을을 위해 이주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표들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고, 주민들보다 자신들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라고 꼬집었다.

▲ 명덕마을 한 주택 옥상에 설치된 미세먼지·중금속 측정기.  /이창우 기자
▲ 명덕마을 한 주택 옥상에 설치된 미세먼지·중금속 측정기. /이창우 기자

◇이주대책, 지금부터 =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명덕마을 이주요구에 앞장섰던 이정욱 위원장, 조명주 이장 등이 주민총회에서 정식으로 마을 대표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주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자와 협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소음피해 배상을 이끌어내는 등 진정성 있는 활동이 반목해 왔던 마을 주민들 마음을 녹였다. 전미경 하동·남해·사천 주민대책협의회 대표는 "그동안 서로 원망도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서로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있다"라며 "문제는 처음부터 주민 희생을 강제하고 갈라치기 했던 발전소와 하동군 행정"이라고 말했다.

명덕마을은 오는 4일 경남도·하동군·하동발전본부 등과 함께 4자 협의체를 열고 이주 문제를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주변지역사업비·지역자원시설세를 발전소 피해 마을의 건강검진, 수익사업, 피해측정 용역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한다. 전미경 대표는 "처음부터 가린마을과 함께 이주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까지 사태를 끌어왔기 때문에 행정이 법·제도적 미비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명덕마을 피해대책위는 하동발전본부에 정식으로 이주를 청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주비용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또한, 발전소 인근 마을에 지역자원시설세·주변지역사업비를 집행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하동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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