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기독교, 불교 같은 기성종교에서는 교조의 탄신일을 기념하지만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깨친 날을 기린다. 곧 깨달음으로 회상을 연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민족종교로서 원불교보다 좀 앞서 개창한 동학(천도교) 교조 최수운 대신사의 득도 시점도 '감나무 새순이 푸른' 4월이다. 칠통의 겨울을 여의고 만물이 약동하는 이 계절에 우리겨레의 선지자들이 우주법계의 거룩한 대원리를 교감하셨다.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대각일성을 일렀다. 대종사의 '정신개벽'의 창도는 갈수록 인류에게 사무치는 말씀이 되고 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원불교 <대종경> 서품4-5장, "대종사 당시의 시국을 살펴보시고 가로되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이 이치의 당연함이거늘, 근래에 그 주체가 위(位)를 잃고 권모술수가 횡행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운지라, 우리가 뜻을 모아 나날이 쇠퇴하여가는 세도(世道)인심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고 천명했다. 그 당시 세계는 이미 물질문명을 앞세운 서세동점과 일본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침략이 강토를 짓밟을 때였다.

'물질개벽'은 근대 과학기술발전과 산업혁명에 의한 물적 토대(하부구조)의 대변혁을 말한 것이다. 반면 이를 등에 업은 제국주의 발흥은 세계도처의 전방위적 수탈 전쟁, 파괴, 남획, 빈곤, 질병 등의 아수라를 야기했다. 게다가 과학적 유물론의 득세로 수천 년간 구축된 유신론적 세계관이 송두리째 붕괴됐다. 물질개벽의 이율배반이었다. 설상가상 욕망의 열차를 탄 물질만능 물신숭배는 주인인 인간마저 소외시켜 본원적 상실감과 정신적 무질서, 공황 등의 다중 속에 새로운 패닉을 양산했다. 킹크림슨의 1969년 데뷔앨범 '묘비명(Epitaph)'의 가사 "혼돈, 그것은 나의 묘비명이 될지라(Confusion will be my epitaph)"가 암시한 바가 아닐까.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게 더 많은, 인류는 다시금 혼돈시대를 맞았다.

대종사는 이같은 주객전도를 예견했다. 자리를 잃은 주체를 되찾고 세도인심을 바로 잡을 '정신개벽'의 주창은 그런 까닭이다.

원불교 첫 교당의 상량문에 쓴 대종사 말씀을 궁구해보면 '정신개벽'의 새벽을 보는 것 같다. '두렷한 기틀을 해와 달이 북질하고 … 소나무는 만 나무에 다 쓰고 난 봄을 거둬 서있다 … 梭圓機日月 松收萬木餘春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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