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사 7명 진정서 제출
군, 알고도 축소·무마 급급
피해 상담·보호 조치 안 해

거창군 산하 거창국민체육센터 수영강사들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체육센터를 관리·감독하는 거창군 체육시설사업소 공무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무마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수년 간 반복된 성희롱 발언 = 수영강사 ㄱ(25) 씨는 29일 "4년여 동안 직장 동료이자 전 수영팀장이었던 ㄴ 씨로부터 성희롱과 함께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ㄱ 씨는 "2018년 6월 다른 동료 강사가 있는 자리에서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묻거나 손으로 성행위를 묘사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밝혔다. ㄱ 씨는 또 ㄴ 씨가 수영복 입은 몸매를 평가하는 등 최근까지 성희롱 발언을 일삼아왔다고 덧붙였다.

ㄱ 씨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강사들도 "ㄴ 씨가 팀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회식을 강요하거나 동료끼리 이간질했다. 심지어 허위로 근무일지와 연가 신청서를 꾸며 수당을 챙겼다"라고 주장했다.

거창국민체육센터 수영강사는 총 8명으로 이 중 7명이 지난해 12월 ㄴ 씨의 비위 사실과 관련해 거창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거창군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ㄱ 씨는 지난 20일 군청 누리집에 이러한 내용을 공개 글로 올렸다.

◇행정이 오히려 2차 가해? = ㄱ 씨가 용기를 내 수차례 담당 공무원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계약해지였다. ㄱ 씨는 지난해 말 계약이 해지됐고, 올해 초 다시 공개 채용돼 수영강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한동안 부당한 일에 맞설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군청 누리집에 자신이 겪은 성희롱 사건과 수영장 부조리 내용을 공개 글로 올린 후, 체육시설사업소에서 직무교육과 근로서약서를 요구해 부담감에 눌려 있다고 털어놨다. 서약서에는 '2021년 근로계약이 향후 계약 연장에 당연히 보장하지 않으며 이를 근로자 본인이 확인한다', '기타 이미 해결된 내부 민원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동료 강사 ㄷ 씨는 "ㄱ 씨가 공개 글을 올린 후 체육시설사업소 관계자가 '조직사회에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 쌍방에 문제가 있지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없다. 직장에 왔으면 분위기를 흐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하는 등 행정이 나서 성희롱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 수영팀장 ㄴ 씨는 "성희롱한 사실 자체가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는 "분란이 생긴 데 따른 책임을 지고 팀장직에서 내려와 일반 강사로 지내고 있다. 군 조사가 끝난 시점에서 또다시 문제를 삼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다른 강사들이 나를 따돌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 거창국민체육센터 전경. /김태섭 기자
▲ 거창국민체육센터 전경. /김태섭 기자

◇작동 멈춘 성인지 감수성 = 행안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는 피해자 또는 대리인이 성 관련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 또는 소문이 있을 경우 직장 내 성희롱 고충상담원과 상담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상담 결과에 따라 조사를 하거나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

ㄱ 씨의 경우 피해자가 수차례 사건 조사와 문제 해결을 요청했음에도 거창군 체육시설사업소는 약식조사에만 그치고,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거창군은 공무원을 비롯해 직영 기관의 성고충 문제를 해결하고자 행복나눔과에 성고충 상담 창구를 두고 있다. 그러나 ㄱ 씨는 이런 사실을 안내받지도 상담받지도 못했다. 특히 행안부는 '사업주(기관장)는 매년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라고 성희롱 교육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수영강사들은 올해 처음으로 교육을 받았다고 전했다.

군 관계자는 "직장내 성희롱 등 문제는 지난해 조사를 통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내용을 서면으로 통보해 줬다"라며 "당시 이의신청이 없었고, 전 수영팀장의 비위 문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감사담당 부서에서 조사 중으로, 엄중하고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창YMCA 시민사업위원회 관계자는 "성인지 감수성이 마비된 조직문화가 문제"라면서 "법률을 통해 성폭력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문제다. 성고충 문제는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접근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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