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유적 발견한 동읍 일대
시선 땅에 두고 구석구석 채집
돌 쥔 채 시대 생활상 상상도
"창원에 왜 구석기 유적 없을까 끝없는 물음·발품 결국 성과"

창원대박물관이 지역 문화재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공룡발자국을 찾아내는가 하면, 창원시에 있는 신규 비지정문화재 1200여 개를 최근 발견해내기도 했습니다. 창원지역 첫 구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을 찾아낸 것도 이곳입니다. 박물관에서 벌이고 있는 문화재 조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가봤습니다. 창원대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을 따라 비지정문화재와 구석기시대 유물 조사현장을 살펴봤습니다. 이날의 모습을 글로 전합니다.

▲ 창원대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비지정문화재 창원 덕산리 조산 전경을 찍고 있다. 덕산리 조산은 음기를 쫓기 위해 인공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조선시대 제사 유적이다. /최석환 기자
▲ 창원대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비지정문화재 창원 덕산리 조산 전경을 찍고 있다. 덕산리 조산은 음기를 쫓기 위해 인공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조선시대 제사 유적이다. /최석환 기자

◇문화재 조사 현재 진행형 = 27일 오전 10시 창원 의창구 동읍 덕산리 소목마을. 창원대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줄자를 들고 비지정문화재 '창원 덕산리 조산' 위에 올라섰다. 돌산 꼭대기에 서서 문화재 조사현장에 동행한 기자에게 김 실장이 말했다.

"문화재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러 왔어요."

"조선시대에 형성된 조산인데, 줄자로 지름도 재고 높이도 재고…."

"요새는 조사내용을 카톡으로 다 전해요."

"이 자리에서 바로 위치를 찍고 단톡방에 무얼 조사했는지 다 올려요."

김 실장이 조선시대에 형성된 곳이라고 말했던 덕산리 조산은 주먹이나 호박 크기의 돌을 삼각뿔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돌무더기다. 음기를 쫓기 위한 목적으로 인공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제사 유적이 조산이다. 직접 가보니 사람 키보다 3~4배가량 높게 돌이 쌓여 있었고, 그 앞엔 비지정문화재 덕산리 조산이라는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과 녹이 슨 쇠줄도 쳐져 있었다. 문화재 주변으론 공장과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저곳 문화재 상태를 살펴본 김 실장은 손전화 카메라로 조산 위치와 전경을 찍었다. 이후 박물관 조사팀원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원형으로 10단 이상 쌓아놓은 곳이라는 짧은 설명도 덧붙였다. "음기가 강한 곳엔 양기가 있어야 한다. 산이 양기다. 음양의 조화를 위해 세워진 게 조산이다. 조사가 부족한 곳은 이렇게 다니면서 내용을 확인한다. 이 문화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주민 면담도 하고, 보고서도 쓴다."

10시 35분께 동읍 용잠리. 그가 덕산리에서 발길을 옮긴 장소는 창원대박물관이 사상 첫 창원지역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한 곳이었다. 농경지 주변으로 크고 작은 돌덩이가 널려 있었다. 그중 일부에선 누군가에 의해 뒤집힌 듯한 흔적이 보였다. 김 실장은 돌을 가리키며 "내가 하나하나 다 뒤집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뒤이어 지표상에 드러난 돌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흙에 살짝 묻힌 돌과 고랑에서 바깥으로 내던져진 듯한 돌도 함께 둘러봤다.

앞서 발견했던 유물과 비슷하게 생긴 돌이라면 눈으로만 보지 않고 좌우 양옆으로 뒤집으며 훑어봤다. 양손으로 꽉 쥐어보기도 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처럼 양손에 돌을 잡고서는 다른 돌덩이를 깨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더니 "느낌이 비슷하다"며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돌덩이 2개를 차로 가져갔다. 김 실장은 "여기에 70~80번 정도 왔었다. 올 때마다 이렇게 한두 개씩 들고 가고 그랬다"며 "조금이라도 구석기시대 유물과 비슷하게 생긴 게 보이면 다 차에 실어갔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간 적도 많다"고 했다.

▲ 김 실장이 돌덩이를 들고 살펴보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 실장이 돌덩이를 들고 살펴보고 있다. /최석환 기자

◇"바닥만 보면서 걷는 게 요즘 일상" = 11시 20분께 용잠6구 지석묘 일대. 다시 자리를 옮긴 이곳에선 김 실장의 손전화로 여러 차례 통화가 걸려왔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시선을 땅 밑에 두고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길이 546cm, 너비 333cm 크기에 달하는 상석 주변에 널려 있는 돌덩이들을 계속 쳐다봤다.

오른손으로 손전화를 들고 통화 중이던 김 실장은 왼손으로 주먹만 한 돌을 잡았다가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 언뜻 보기에도 무게가 꽤나 나갈 것처럼 보이는 돌 1개를 들어 좌우로 뒤집어보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엔 평평한 돌덩이 위에 앞서 쥐었던 돌을 올려놓고 살펴봤다. 돌멩이 3개 중 2개를 버리더니 다시 다른 돌 하나를 더 집어들고 차량 뒷좌석 바닥에 돌 두 덩어리를 실었다. 김 실장은 돌을 차에 실으면서 "아내가 저번에 차에 실은 돌을 버린 적이 있었다"며 웃었다.

낮 12시 50분께 동읍 주남저수지 주변 농경지. 김 실장은 오후에도 땅만 내려봤다. 바닥에 있는 돌에 시선을 두고 일대를 걸어다녔다. 쪼그려 앉아 돌을 손에 쥐어 보이기도 하고, 주운 돌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기도 했다.

▲ 땅을 보며 걷고 있는 김 실장이 유물 찾기에 여념없다. /최석환 기자
▲ 땅을 보며 걷고 있는 김 실장이 유물 찾기에 여념없다. /최석환 기자

"온종일 바닥만 보면서 쭉 걷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라고 말한 김 실장은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걸으면서 바닥을 살펴봤다. 구석기시대 유물에 초점을 둔 그의 입에서 갑자기 "가야 때 토기편이 많다"라는 말이 나왔다.

기자 눈에도 깨진 토기가 흙바닥 곳곳에서 보였다. 깨진 토기 7개를 모아놓고 사진을 찍더니 "이 일대가 다 유적"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이곳에서 조사를 마친 뒤 의창구에 있는 고인돌과 도계동 고분군 등을 추가로 돌아봤다.

그는 조사를 끝내고 박물관으로 복귀하면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왜 창원에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없느냐는 생각을 많이 해왔었다. 그동안 창원에서 조사가 정말 많이 진행됐었는데도 찾아지지 않다가 도계동과 용잠리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라며 "유물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구석기시대 유적을 찾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다 찾아냈을 거다. 앞으로 몇 년 내에는 구석기 유물이 계속 더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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