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도로 계획에 함안군민 대안 제시
국가사업도 주민 불편 최소화 애써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옛날 발언 중 "공무원이 검토하겠다는 말은 '안 된다'고 보면 된다"는 게 있었다. 그는 "나도 서울시장과 대통령을 하면서 그 말뜻을 알게 됐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며칠 전 함안 군북면 죽산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명회가 열렸다. 함안 군북∼가야를 연결하는 국도 79호선을 새로 내면서 마을 앞 논에 19m 높이로 흙을 쌓아 도로를 내려고 해 주민들이 큰 산이 생긴다며 반발하자 마련된 자리였다. 주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물론 국민신문고 등에 '국도 79호선 건설로 마을이 10층 높이 땅 아래로 꺼지게 생겼다'는 내용의 불합리한 도로개설 상황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날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했던 탓일까?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제안한 기존도로 활용에 대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주민들은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부산국토청이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민원을 이첩받아 보낸 답변을 보면 과연 그럴까 싶다. '도로구역 결정을 위한 사전절차로 관계기관과 협의가 진행 중이며, 협의 완료 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협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란다. 또 '절토구간 터널화와 성토구간 교량화 요청은 국토부 설계방침 심의·설계 적정성 검토 등을 통해 고려된 최적안으로 설계돼 현실적으로 공법 변경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사실 이 도로는 의령지역 취재를 위해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다. 도로 옆 논에 연두색과 붉은색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면서 새로 도로를 내려나 보다고만 생각했지, 마을 앞 200∼300m 전방에 19m 높이의 큰 성벽이 생긴다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주민들은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만 한 것도 아니다. 도로가 마을 앞을 질러 높게 지나가더라도 흙을 쌓아 앞을 가릴 것이 아니라 교량으로 연결해 시야라도 확보해 주고, 산을 깎을 게 아니라 터널로 해 달라고 했지만, 부산국토청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다시 "4차로가 아닌 2차로로 길을 내면서 굳이 마을 앞을 지날 필요가 있느냐? 기존 국도 79호선을 활용해 선형을 개량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대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이곳 지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수긍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애써 부산국토청의 '검토' 의견을 곡해하려는 의도는 없다. 뒤늦게나마 주민 의견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함안군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도로가 개설되기를 바란다니, 원론적인 의견이 아닌 좀 더 적극적으로 주민 편에 서기를 주문한다.

군과 주민이 한목소리로 대안노선을 요구하면 부산국토청의 '검토'는 MB가 이해했던 '안 된다'가 아니라 주민 불편을 덜어주는 '검토'가 될 것으로 믿는다. 아무리 국가사업이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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