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2월 22일. 내가 사랑하는 박 선생님 어째서 편지를 보내지 않나요? 편지 쓰는 것을 싫어하고 불충실한 분은 바람나는 법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톤코(토시코의 별명)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나는 악마의 포로이고, 약한 아이이고, 나쁜 애입니다. 반성하고 참회하는 법을 잊은 자는 신의 신전에 설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꿈속에서 샤미센이나 거문고의 기술을 익히거나 해요…. 왠지 막연하게 괴롭군요."(71쪽)

이 편지를 쓴 이는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다. 요시코는 1915년 통영에서 태어나 '만추' '왕관' '산비둘기' '여성 참정권 시비' '늪속에 햇빛 비치더라' 등 희곡을 쓰고 1947년 짧은 생을 살다 간 극작가 박재성의 부인이다. 둘은 1936년 도쿄 길상사 공원에서 처음 만났고 가족이 되었지만, 광복으로 헤어져야 했다. 1947년 박재성이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고 둘이 다시 밀선을 타고 돌아오는 뱃길 대한해협에서 풍랑을 만나 함께 세상을 뜨고 말았다.

책에 실린 편지는 1946년 가을에서 1947년 여름까지 요시코가 재성에게 보낸 127통이다.

편지를 번역하고 분석한 경남대 김봉희 교수는 1997년 어느 연출가로부터 박재성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이듬해 언양 답사에서 박재성의 조카로부터 '한 뭉치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게 이 편지다. 4부로 구성되었고 끝에는 편지글에 대한 소고가 실렸다. 경진. 196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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