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방송사에 자료 건네…대상자, 인권위에 진정 제기
인권위 "개인정보 보호 위배"…명예·영업 피해 주장은 기각

코로나19 자가격리 위반자 촬영 영상을 본인 동의 없이 방송사에 제공한 지방자치단체 행위는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개인정보를 수집 목적 외 다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공익적 목적'이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건 = 지난해 6월 말 ㄱ 씨는 코로나19 확진자와 한 로컬푸드 매장에 머물면서 확진자가 만진 수박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연이어 만졌다.

확진자 역학조사에서 매장 내 CCTV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확인된 ㄱ 씨는 '확진자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검사 후 이틀 뒤 ㄱ 씨는 '음성'이라는 1차 검사 결과를 문자로 받았다. ㄱ 씨는 이후 자가격리 중 격리 장소(자택)를 이탈해 자신의 사업장으로 이동했다. 이에 출동한 구청 코로나 대응팀과 청원경찰은 ㄱ 씨의 자가격리 장소 이탈 현장과 자가격리 조치에 항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구청은 ㄱ 씨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즈음 한 언론사 기자는 자가격리자 이탈 내용을 보도하고자 ㄱ 씨 관련 영상을 구청 홍보팀장 ㄴ 씨에게 요청했다. ㄴ 씨는 청원경찰로부터 받은 영상파일 3개를 모자이크 처리 없이 기자에게 전송했고, 이 영상은 '확진자 접촉 후 격리지침 위반 자가격리자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이에ㄱ 씨는 반발했다. ㄱ 씨는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고, 동의도 없이 제공한 영상과 관련 보도로 뒷모습과 성씨, 사업장 위치·상호가 그대로 노출돼 영업 피해를 봤고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ㄱ 씨 진정에는 코로나19 음성으로 확인됐음에도 확진자 인근에 있었다는 이유로 밀접 접촉자로 분류하고 자가격리를 통보해 이동을 제한한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판단 = 구청 측은 "격리지침 준수 인식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모자이크 처리 등을 조건으로 영상을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 판단은 달랐다. 인권위는 ㄱ 씨 영상이 법적 증거자료로 확보한 영상임을 밝히며, '수집한 목적 외 용도로 활용해서는 안 되는 개인정보'라고 봤다.

인권위는 "ㄴ 씨는 영상을 기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에서 결재 등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정보 주체인인 ㄱ 씨 동의도 받지 않았다"며 "모자이크 처리 등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소관업무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볼만한 정당한 사유도 없다"며 "이 같은 제공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배하여 헌법(제10조·17조)에서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공익적 목적으로 영상을 제공하더라도 개인정보 보호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관련자 직무교육을 하고, 내부 절차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다른 진정 내용인 '자가격리에 따른 이동제한'과 '촬영한 영상·고발내용 방송'은 기각했다.

인권위는 관련 법과 중앙방역대책본부 등의 대응지침, 세계보건기구(WHO) 확진자 접촉자 기준에 비춰 봤을 때 ㄱ 씨를 밀접 접촉자로 분류하고 자가격리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봤다. 또 ㄱ 씨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는 1차 검사에 불과하고 잠복기가 있음을 고려할 때, 일정 기간 자가격리 조치도 ㄱ 씨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ㄱ 씨 주장과 달리 성씨와 상호 등이 보도 과정에서 노출되지 않았음을 밝히며, 명예·영업피해 주장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 씨는 지난해 11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고 나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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