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낙동강 줄기 따라 달려
유유히 흐르는 강·들판 조화
경비행기 탑승 체험도 가능
용화산 오르면 시원한 경치
강나루공원 청보리밭도 일품

함안에서 자전거를 좀 타봤다면 둑방의 매력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홍수 예방을 목적으로 쌓아올린 언덕은 자전거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둑방 위에서 한쪽을 바라보면 강이 유유히 흐르고,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들판이 천천히 결실을 거둬간다. 그리 높지 않아도 둑방에 올라서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어지러운 도심과 일상에서 벗어나 만나는 강과 들녘은 평화로움과 넉넉함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번 유람의 출발지는 함안 악양둑방이었다. 이후 악양생태공원,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합강정과 반구정, 강나루캠핑장을 지나 창녕함안보까지 달렸다. 창녕함안보를 반환점으로 악양둑방까지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전체 이동거리는 69㎞였다. 예상보다 길었고, 6차례 유람 가운데 최장 이동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전에 길을 숙지하지 못한 탓이었다. 두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 5~10분 정도를 하염없이 달리기도 했다. 길을 헷갈려 버리니 잠시였으나 여행의 평온이 깨지는 듯했다. 그나마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이라는 말이 위안이 됐다.

▲ 악양둑방 아래 흙길을 지나면 경비행기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최석환 기자
▲ 악양둑방 아래 흙길을 지나면 경비행기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최석환 기자

◇악양둑방 뒤에 숨은 풍경

함안 둑방과 자전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함안군자전거연맹이 지난 2019년 12회까지 연 '함안둑방 자전거 대축전'도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했다. 전국에서 가장 길게 뻗어 있는 338㎞ 둑방길과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을 알리는 취지다. 2019년 5월에 열린 대축전은 가야읍 함주공원에서 출발해 산인면과 법수면 일원 33㎞를 달리는 여정이었다.

자전거 유람단은 악양둑방에서부터 남강과 낙동강의 물줄기를 따라갔다. 악양둑방으로 올라가니 둑방 뒤편으로 경비행기가 나란히 서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악양 일대는 기류가 안정적이어서 경비행기가 날기에 알맞은 환경이라고 한다. 성우항공산업(주)은 체험비행(평일 6만 5000원·주말과 공휴일 8만 원, 문의 055-583-2133)을 운영 중이다.

유람 당일(4월 16일)에는 둑방길이 정비 중이어서 아래쪽 흙길로 가야 했다. 5분 남짓 페달을 굴리니 악양교로 올라서는 길이 나왔다. 악양교를 건너 왼쪽으로 꺾으면 1분도 안 걸리는 곳에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있다. 1953년 9월께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 씨가 이곳에서 오빠 소식을 기다리며 나룻배 노를 젓던 여동생들의 사연을 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1959년 발표된 '처녀뱃사공'(작곡 한복남·가수 황정자) 노랫말이 됐다. 함안군은 2000년 10월 이 노래비를 세웠다.

참고로 악양둑방길은 길이 5.4㎞로 걸어서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두 다리로 걷는 함안의 아름다운 11길' 가운데 '처녀뱃사공 노을길' 2코스다. 남강변 갯버들 숲과 모래사장, 둔치와 둑길에 심은 꽃양귀비와 유채꽃, 코스모스 등으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길이다. 여기에 새벽녘 물안개나 해 질 녘 노을이 더해지면 이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이날 유람단은 '용화산 합강길'(길이 2.7㎞), '칠서 강나루길'(강변로~청보리밭·3.7㎞)도 지났다. 악양의 꽃길과 노을, 합강정과 반구정의 해돋이, 강나루생태공원의 청보리는 '함안 9경'에도 속한다.

▲ 합강정과 반구정으로 가려면 산에 난 길을 따라가야 한다. /최석환 기자
▲ 합강정과 반구정으로 가려면 산에 난 길을 따라가야 한다. /최석환 기자

◇인생사진 명소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지나면 650m가량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 끝에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 악양생태공원 표지판을 따라갔다. 1㎞가량 내리막길을 달리면 잘 가꿔놓은 공원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악양생태공원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생사진 명소로 이름나 있다. 이곳 식물원과 놀이터, 숲길 등도 산책하기에 좋다. 다만 지난해 9월에는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거리 두기를 위해 핑크뮬리를 잘라내기도 했다.

공원에서 빠져나와 왼쪽 평기늪 방향으로 달렸다. 평기늪에서는 오른쪽으로 꺾어 들판을 가로질렀다. 도로 양쪽에 농기계가 다니는 길이 확보돼 있어 자전거가 다니기에도 비교적 나은 환경이었다. 구룡정사거리를 통과해 한 갈빗집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구암로를 탔다. 이 갈빗집에서부터 중간에 나오는 장암보건진료소는 오른쪽에 두고 2.3㎞ 떨어진 곳까지 달렸다. '농로 겸용 자전거도로'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둑방이 왼쪽에 나온다. 2.5㎞ 남짓 이 둑방길에서 다시 한 번 둑방의 운치를 즐겼다. 이 길은 합강정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 합강정 전경. /최석환 기자
▲ 합강정 전경. /최석환 기자

◇강변 롤러코스터

용화산(193.2m) 끝자락 강변에 자리를 잡은 합강정과 반구정을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합강정으로 오르는 길부터 반구정에서 내려오는 길까지 자전거 우선도로다. 길은 물을 닮아 굽이치는 느낌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모두 경사가 급한 편이다. 내리막길에는 마른 솔잎이 깔려 있어 미끄러지는 사고를 조심해야 했다. 길이 조금 험했지만, 강 건너편 창녕 남지읍에 활짝 핀 노란 유채꽃 들판이 눈을 사로잡았다.

합강정 오르막길 들머리에는 '오르막 400m 경사도 7%' 표지판이 있다. 이 같은 표지판은 함안 자전거 여행의 길잡이가 됐다. 길을 헤매다 이런 표지판을 발견할 때는 반가웠다.

페달을 꾸역꾸역 밟아 800m 남짓 오르니 합강정 비석이 나왔다. 왼쪽에 있는 내리막길로 가면 된다. 잠시 쉬는 와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길가에서 발견한 찔레 줄기를 건네 처음으로 맛봤다. 어릴 적 나무에서 몰래 따먹었던 설익은 대추 맛과 닮은 듯했다.

합강정에서 400m만 가면 반구정 입구가 나온다. 이곳 오르막길은 더 가팔랐다. 반구정에서 남지철교 방면으로 향할 때는 '왼쪽, 왼쪽, 왼쪽'을 기억하면 된다. 합강정과 달리 반구정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출입 명부를 작성 중이었는데, 관리자에게 길을 물었더니 이렇게 알려줬다. 갈림길을 만날 때면 무조건 왼쪽으로 가면 된다는 얘기다. 합강정과 반구정 모두 나이 많은 나무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합강정에는 수령 400년 은행나무(높이 23m·둘레 460㎝, 2014년 보호수 지정)가, 반구정에는 수령 650년 느티나무(높이 15m·둘레 550㎝, 2000년 보호수 지정)가 절경과 어우러진다.

▲ 강나루생태공원이다. 청보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푸른 물결이 이는 듯하다. 합강정과 반구정 산길을 지나온 피로가 싹 가신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여기서 잠깐 머물다 가자.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 강나루생태공원이다. 청보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푸른 물결이 이는 듯하다. 합강정과 반구정 산길을 지나온 피로가 싹 가신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여기서 잠깐 머물다 가자.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지친 몸을 안아준 청보리밭

용화산을 완전히 벗어나 도흥지를 끼고 320m 남짓을 오르면, 왼쪽에 '오르막 10m 경사도 7%' 표지판이 나온다. 이 자전거길은 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입구까지 이어진다. 수도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300m만 가면 남지철교가 있는데,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통제 중이었다. 유채꽃이 만발한 풍경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인근 계내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야 했는데, 길을 헷갈려 오른쪽 칠서산업단지 방면으로 달리기도 했다. 산단을 가로질러 점심을 먹기로 한 농가맛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식당 옆 진늪에서 재배한 연근으로 음식을 차리는 집이었다. 1인용 솥에 나온 연근밥을 공기에 덜어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 뚝딱 해치웠다.

식당에서 나와 870m를 더 가면 왼쪽에 낙동강자전거길로 접어든다. 둔치 아래쪽으로 가면 강나루캠핑장, 강변 산책로와 공원이 나온다. 생각보다 긴 여정에 지쳐 있을 때쯤 청보리밭이 나타났다. 3㎞가량 청보리밭을 옆에 두고 달렸는데, 푸른 기운 덕분에 체력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길 끄트머리에 소랑교가 보인다. 이 다리 위로 올라서서 덕촌마을까지 가야 한다. 전방 1.5㎞ 지점에서 '농로 겸 자전거도로' 표지판을 보고 왼쪽에 난 길로 들어갔다.

다시 1㎞ 남짓을 달리면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자전거길' 표지판이 나온다. 역시 왼쪽에 있는 밀포교를 따라가면 나무 난간 형태로 자전거길이 조성돼 있다.

이대로 1㎞를 가니 '자전거길 종주 창녕함안보인증센터'가 나왔다. 한숨 돌리고 창녕함안보(643.8m)를 건너 창녕 길곡면에서 남지읍까지 달렸다. 남지입구오거리 앞 남지대교를 건너 다시 함안으로 들어섰고, 칠서산단과 대산면을 지나 악양둑방으로 돌아왔다.

▲ 여행의 묘미, 이젠 익숙해졌다. /최석환 기자
▲ 여행의 묘미, 이젠 익숙해졌다. /최석환 기자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합강정과 반구정 =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산길로 1㎞쯤 가면 1633년(인조 11년)에 지어진 합강정을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학자 조임도(1585~1664)가 은거, 수학했다는 곳이다. 400년 수령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조용한 한옥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500m쯤 더 가면 반구정이다. 이 정자에도 수령 65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반구정은 조선 중기 학자 조방(1557~1638)이 지은 정자인데, 강물에 침식되어 후손들이 1858년 청송사가 있던 곳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널따란 낙동강과 남지철교, 남지 유채꽃밭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합강정과 반구정 가는 산길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위성지도 등을 활용하면 길을 확인할 수 있다.

▲ 약재들이 어우러진 연근밥. /최석환 기자
▲ 약재들이 어우러진 연근밥. /최석환 기자

◇연근 정식 = 자전거유람단은 함안 농가맛집으로 선정된 한 식당에서 연근 정식(1만 원)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식당 뒤 커다란 연못에서 직접 키운 연근이라고 한다. 대추, 은행 같은 약재들이 어우러져 맛을 돋운다. 영양도 풍부하다. 솥에 담긴 밥을 대접에 덜어 먹고 솥에는 물을 부어 숭늉을 우려낸다. 반찬으로 나오는 산나물과 가지 튀김도 신선하다. 함안군은 수박, 참외, 복숭아, 파프리카 등과 함께 연근을 대표적인 농특산물로 내세우고 있다.

◇강나루생태공원 = 강나루생태공원의 청보리밭에서 놀아보자. 이곳의 청보리 들판은 함안 6경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물결이 장관이다.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다. 1인용은 1시간에 2000원, 2인용은 3000원에 대여해 이용할 수 있다. 축구장, 농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도 조성돼 있다. 공원 안에는 오토캠핑장도 있다. 주말에는 캠핑족들로 붐빈다. 제1 캠핑장 120면, 제2 캠핑장 77면 등 총 197면이다. 평일에는 1만 5000원, 주말에는 2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색다른 야영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문의 055-586-2510.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