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2차 출전은 5월 29일 처음 거북선을 앞세운 사천해전으로 시작돼 6월 2~7일 통영 당포, 사천 당항포, 거제 율포 해전에서 39척의 적선을 분멸시켰다. 7월 8일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한산대첩이 3차 출전이며, 그 유명한 학익진 전법으로 왜 전함 59척을 수장시켰다. 이틀 뒤 부산 안골포 승전 등 연전연승의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하였다. 9월 1일 4차 출전 부산포 해전에서도 대승하였다. 다음해(계사년) 7월 장군은 경상도에 출몰하는 왜적을 막기 위해 군영을 한산도로 옮기고 8월에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다.

그러나 온 조선이 초토화된 병란의 와중에서도 당파싸움은 계속되었고 강토와 백성을 버리고 달아났던 조정과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무고하여 마침내 백의종군까지 시킨다. 장군의 빈자리에 원균이 제독이 되어 이끈 정유년(1597년) 거제 칠천량 해전은 조선 전함 160척이 수몰당한 비통한 참패였다. 조선 수군의 유일한 이 패전에 어찌 비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 다시 복귀한 장군은 남은 12척으로 울돌목 해전의 승리를 이끌었고, 장군이 순국한 노량해전은 남해 관음포 앞바다였다. '단 한 명의 적군도 살려 보내지 말라'며 대장선을 앞세워 독려하던 장군의 죽음은 일을 마친 대장부가 스스로 택할 수밖에 없던 죽임이 아니었던가?

마산 합포·진해만, 고성·통영만, 거제·남해 연안의 지중해. 이 해역이 품은 가치로서 구국 염원으로 푸른바다를 붉게 물들인 결사항전의 역사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중해 곳곳 조선 수군의 승첩지마다 이를 기리고 후손에게 교육할 거룩한 기념상 건립, 그것도 아주 위대한 작품으로 수놓을 것을 제안한다. 일본 관광객이 올진대 오역의 현장에 참례하고 절로 눈시울을 적시도록….

지중해가 가진 또 하나 가치는 양식어업이다. 합포만 덕동 수정 반동해역의 홍합과 굴, 진동만의 미더덕과 오만둥이, 피조개를 비롯한 무수한 양식장과 덕장. 특히 진해만에 집중된 이들 부표는 미더덕이 아니면 홍합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남해대교 부근 김 양식장, 통영의 굴 양식장 등 해산물의 보고. 패류뿐 아니라 진해만에는 대구 산란장, 돔, 전어, 도다리 양식 및 어획이 집중된 천혜의 보금자리다.

수군 승첩을 선양하고 양식어업의 싱싱한 현장을 곁들여 관광프로젝트의 콘텐츠로 삼는다면 지중해 선상유람의 격조가 달라질 것이다. 다도해를 지중해로 해석한 안목, 더불어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겨 공동체 의식을 발현하고 숨겨진 상징의 가치를 발견하는 통찰을 더한다면 지중해의 참다운 의미부여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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