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의 날'과 1616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4월 23일에 작고한 역사 등에서 유래해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했다.사람마다 인생의 책이 있다. 큰 울림을 주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가는 문이 되어준 책 말이다. 당신에게 책은 어떤 의미이며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인지 경남지역 책방지기와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 박수진(32) 남해 아마도책방 대표
▲ 박수진(32) 남해 아마도책방 대표

박수진(32) 남해 아마도책방 대표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책읽기'도 그중 하나다. 박수진 대표는 "책읽기가 다른 활동보다 우위에 있고 지적이고 멋진 일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며 "재밌으니까 읽는 거다"고 말했다.

그는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을 읽기 전에는 책이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거나 삶의 방식을 바꿀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바꾼 것이다. 책이 우리네 삶에,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깨닫는 계기가 됐다."

박 대표는 지난 2019년 <아무튼, 비건>을 접한 뒤 생선과 해산물을 먹는 채식,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됐다. 책을 읽기 전에 동물이 고통받고 환경을 파괴하는 공장식 축산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한 몇 주간은 완전 채식을 했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완전 채식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해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책 속에서 발췌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의 관심이 나에게서 타자로 옮겨갈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타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순간 타자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며, 대신 우리라는 신기한 집합이 탄생한다."(7쪽)

 

▲ 정서훈(40) 진주 헌책방 동훈서점 대표
▲ 정서훈(40) 진주 헌책방 동훈서점 대표

정서훈(40) 진주 헌책방 동훈서점 대표

특별한 꿈이 없던 정서훈 대표는 18살 때 이 책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단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에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지금도 버리지 않고 있다.

"1998년 동네 근처에 진주서부도서관이 생겼다. 소도시와 고등학교 세계가 갑갑했던 나는 당시 문화에 대한 갈망이 컸고 도서관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을 서성이던 정 대표의 눈에 들어온 책은 바로 <1998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이었다. 현대문학이 1994년부터 펴낸 기획시리즈다. 김영하·김인숙·박완서 등 10명의 단편이 실렸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은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정 대표는 작가와 제목을 똑똑히 기억했다.

"김영하의 '흡혈귀'는 기괴하면서 신선했다. 배수아의 '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는 분명히 한국어로 쓰였는데 외국책을 읽는 듯 이국적이었다. 백민석의 '목화밭'은 엽기적이었다. 지금 보면 요한 묵시록 같은 예언서에 가까웠다."

정 대표는 가업을 이어 2009년부터 진주에서 동훈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중무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을 지키는 그에게 책은 '밥'과 같다.

"저한테는 (책을 팔아)밥을 먹게 해주고 마음의 병이 들지 않게 하는 양식이다."

 

▲ 장참미(32) 창원 오누이북앤샵 대표
▲ 장참미(32) 창원 오누이북앤샵 대표

장참미(32) 창원 오누이북앤샵 대표

누군가 "무슨 책이 좋았어? 어떤 책이 재밌었어?"라고 물어본다면 장참미 대표에게 좋아함과 재미의 기준은 바로 공감이다.

"내게 '인생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공감이다. 혹자에 따르면 어떤 책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는데 아직 그런 책을 만나보진 못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지 않아서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책을 집어 든 그 순간에 내 마음을 흔드는 문장, 작은 에피소드만으로 매 순간 그 책들은 내게 인생 책이 된다."

장 대표가 선택한 책은 <모순>이다. 이 책은 양귀자가 1998년 펴낸 세 번째 장편소설로 25세 미혼여성 안진진이 주인공이다. 가난한 어머니와 부유한 이모, 즉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극단으로 나뉜 두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모순투성이인 이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가 안진진이다'는 어느 독자의 감상평처럼 <모순>은 공감도가 높은 책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삶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동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적 한계. 그렇기에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를 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장 대표는 "그 선택의 순간, 떠오르는 책이 바로 <모순>이다"고 말했다.

 

▲ 강상도(48) 김해 경운초교 전담 사서
▲ 강상도(48) 김해 경운초교 전담 사서

강상도(48) 김해 경운초교 전담 사서

강상도 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이 될 낡고 오래된 것들, 가슴에 와 닿은 뇌리에 스친 문장과 책들을 불러 모아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서다.

그에게 책은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존재다.

강 씨는 "위안을 받거나 때론 나를 성장시키고, 가슴 뛰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책'은 개인적인 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삶 속에 녹아내리기 때문에 그 의미와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미라의 <책 여행자>는 저자의 발길을 따라 길모퉁이에 있는 유럽 헌책 골목에서 지적 향기가 파고든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에서, 두 번째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유럽의 서점과 헌책방, 작가가 만난 서점 주인들, 책 수집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저자는 찰스 디킨스가 자주 찾았던 선술집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거나 어느 때는 카프카의 집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또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방 안에 갇혀 창으로 보았을 숲 너머 계곡을 향해 한참을 서 있는다. 묘한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작가와 시인들의 세계에 이른 듯 짜릿했다. 여행의 동반자가 된 것처럼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에 메모했던, 다시 한번 읽어 보았던 것들의 시간을 기억한다. 꼭 가봐야 할 유럽 책방들이 하나둘씩 늘 때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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