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으로 존재가치 확인하는 사람 많아
삶의 대전환기에 진짜 중요한 건 뭘까

"호칭은 ○○센터 운영위원장이시고, ○○○○ 연구위원이라고 하면 되겠죠?" "아뇨, 센터 운영위원장은 요즘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으니 빼 주시고요. 위원도 된 지 얼마 안되니 그냥 연구원으로 불러 주세요." "그래도…."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방송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PD에게 좋은 내용 있다고 부탁드렸더니, 섭외과정에서 출연자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전한다. 존경스럽다. 보통 출연자 대부분은 자신의 호칭이 되도록 그럴싸한 것으로 많이 불리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호칭을 다 불러주지 않는다며 화내고 따지기도 한다. 현실이 그러니 호칭에 대해 최대한 자신을 낮추는 출연자가 낯설고 놀랍기도 하지만 생각도 깊어진다.

'인정욕구'일 것이다. 남이나 자신에게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중요하니까. 특히 요즘은 모든 상황이 급변한다고 여겨지는 불안한 시대다. 이럴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크게 인정받는 일은 살아갈 힘을 충전시켜 줄 수 있다. 하지만 인정받는 방법이 호칭으로 가능한 정도가 얼마나 될까?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달하려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맞다. 그런데도 여전히 호칭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인정받으려는 방법이 너무 가난한 탓이다. 호칭 요구가 화려한 출연자일수록 내용이 우울했던 경험이 있다.

2030, 2020년부터 2030년 사이를 인류 삶의 축이 바뀌는 '대전환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인류 앞에 던져진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뜻일 것이다. 항상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 믿었던 강대국들도 실수하고 정책오류를 내고 리더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장면을 볼 때 혼란스럽다. 저런 국가들은 거의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일을 처리할 텐데 왜 저럴까. 너무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일까.

일단 우리 식대로 풀어보자면, 학교에서 배운대로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많은 건지, 어떤 일이 중요한지도 판단이 안되는 탓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앞에 드러나는 일부터 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심각한 문제들은 되도록 뒤로 돌리고, 하는 척만 해도 반짝 드러날 것들을 앞에 세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물론,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도 하지만 나중에 다 드러날 진실이 따로 있다면 낭패다. 호칭을 앞세우는 출연자와 비슷한 결과의 경험이 떠오른다.

'하지 말라'는 것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법과 규제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무인자동차나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문명의 이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법과 규제가 많아지고 문명의 이기가 많아질수록 인류의 삶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들어진다. 당장의 현실로 보면, 코로나는 여전히 기세가 당당하다. 다수의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무위이치(無爲而治), 유가에서는 '현명한 사람을 앉혀 덕으로 백성들을 감화시켜 원만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본다. 도가에서는 '자연에 순응해 통치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풀이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한다면, 나중에 아무리 제대로 하려해도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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