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도 권리·존엄 소외
통역사 없어 은행 일 못보기도
다양한 뉴스 통역 고민해주길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일상에서 그들을 잘 마주치지 못합니다.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못합니다.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유무형의 장벽이 장애인들을 막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장벽을 더 두껍게 했습니다. 제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유형이 다른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코로나19 탓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그들 사연을 들어봅니다.

"비장애인은 청각장애인과의 소통을 귀찮아할 때가 잦습니다. 그럴 때 항상 고민하는 주체는 장애인 당사자들이죠. 저는 비장애인들이 우리와 어떻게 대화할 건지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20일 오후 2시 경남농아인협회 창원시 마산지회 사무실에서 전정희(50) 농통역사를 만났다.

농통역사는 수화통역사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 수화통역사가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돕는다면, 농통역사는 나이 든 이후 청각장애가 생겼거나 특수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수화를 모르는 청각장애인의 의사를 대신 전한다. 농통역사는 청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오랜 경험을 통해 수화가 아닌 몸짓에서도 정확한 의사를 읽어낼 수 있어서다. 이들이 수화로 수화통역사에게 의미를 전달하면, 수화통역사는 다시 비장애인에게 통역한다.

그는 "코로나19로 모두가 마스크를 끼게 됐지만, 청각장애인끼리 소통은 별로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수화통역사를 통한 비장애인과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라며 "수화와 함께 입 모양과 표정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통역하지 않으면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방역 주의사항 등 주요 정보를 전달받는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농아인협회와 수화통역센터가 최대한 격차를 메우고자 애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떠나서도 일상에서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와 존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통역사 전정희 씨가 지난 20일 경남농아인협회 마산지회 사무실에서 수화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농통역사 전정희 씨가 지난 20일 경남농아인협회 마산지회 사무실에서 수화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그는 3년쯤 전 한 은행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종이에 글을 써서 받고 싶은 서비스를 은행원에게 전달했지만, 은행원은 끝내 수화통역사와 같이 와달라고 답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느낀 점이 있다.

그는 "비장애인들은 수화통역사라는 청각장애인과 소통 창구가 장애인이 아니라 자신들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라며 "필담으로 소통하는 것조차 불편하다면 병원·은행·공공기관 등에 수화를 쓸 수 있는 인원이 상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자격증 원격수업을 하던 한 학생이 "교수님이 강의하는 영상을 누르면 만화처럼 수화하는 영상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2015년 삼성전자 터키법인이 현지에 도입한 '청각장애인 콜센터'를 예로 들었다. 명칭은 '두얀 엘레르(Duyan Eller)'. 터키어로 '손을 듣다'는 뜻이다. 청각장애인이 휴대전화로 전용 누리집에 접속하면, 어디서든 수화통역사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청각장애인이 하루 동안 어떤 불편함 없이 비장애인과 소통하는 내용의 영상을 찍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자동차기업이 좋은 옵션을 갖춘 차를 외국에 먼저 팔듯이 장애인에게 좋은 서비스는 한국에 나중에 도입되려나 보다"라며 웃었다.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전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브리핑, 방송사 주요 뉴스에서 수화통역이 제공되는 일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그는 '청각장애인은 중요 뉴스만 볼 수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요하지 않더라도 새롭고 재미있는 소식을 듣고 싶은 청각장애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정부 발표나 주요 뉴스 이외에는 여전히 수화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예산 부족이 원인이라는 걸 알지만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장애인들에게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수화를 배울 것을 권했다. 각 지역 수화통역센터에서 기초·중급·고급반을 운영하지만 치매 예방이나 심심풀이로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2월 3일은 수어의 날,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6월 3일은 농아인의 날이라며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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