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먼저인 평등, 남탓만 하는 공정
진보의 소중한 자산 조롱거리로 전락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효관 청와대 문화비서관과 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의 비위 의혹에 신속한 감찰을 지시했다. 적절한 조치였고 많은 국민이 바라던 '내로남불' 하지 않는 권력의 모습이었다. 여론의 반응을 보니 그러나 칭찬보다 냉소가 앞선다. "조국 사태 때는 뭐하다가 이제 와서…",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 안 됐다며 조국을 감쌀 때는 언제고…"라는 의견들이었다.

조 전 장관뿐이 아닐 것이다.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 아들의 특혜성 군복무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성추행 고소를 당한 채 죽음을 맞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돌아보면 '선택적 정의'가 작동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권으로서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문제를 인정하면 핵심 지지층이 등돌릴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 문제없는 척하자니 특정 진영과 무관한 진보층이나 중도층 민심이 걸린다. 정권 핵심부는 모처럼 되찾은 권력이 검찰이나 보수야당 등 적대세력에 휘둘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반된 민심은 추후 다른 방식으로 회복하고, 일단 핵심 지지층을 지키는 게 국정 운영에 낫다고 봤을 수 있다. 만만하게 보이거나 어설프게 지지층을 설득하다가는 과거 노무현 정부 꼴이 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여권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해 4·15 총선 결과는 이런 위험천만해 보이는 승부수가 100% 이상 적중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착각도 여권에 안겼다. 국민에게 도덕적 흠결이 있거나 오만하게 비치더라도 코로나19 극복 등 민생경제만 잘 챙기면 국민이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는 부동산 관련법 개정 등 거여의 입법 독주와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띄우기, 4차 재난지원금 편성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은 그러나 그저 표 찍는 도구가 아니었고, 일자리, 집값, 코로나 등 민생경제도 쉬이 나아질 형국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등 야권도 언제까지나 당하고 있을 호구가 아니었다.

정권은, 그리고 진보는 어느새 조롱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천명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다짐은 야당이 더 애용하는 자승자박의 명구가 됐다. 내 편이 먼저인 평등, 남 탓만 하는 공정, 자기 잘못은 절대 인정 안 하는 정의, 말만 번드르르한 무능한 진보라는 환멸이 국민들 사이에 퍼졌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진보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확장하기는커녕 헛되이 소모하고 재기 불능의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난 4년 이상의 길고 지난한 세월이 필요할지 모른다. 조국·박원순·추미애 등을 "공과가 있다"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안고 가는 한 진보는 앞으로 누구를 비판해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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