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총림방장 고산 혜원대종사 원적(圓寂)에 부쳐
엄격한 수행자이자 열린 마음의 스승
불식촌음·선농일치의 가르침 되새겨

그날 3월의 벚꽃은 유난히 화사하게 피어 섬진강변을 하얗게 물들였다. 3월 23일 쌍계총림방장 고산 혜원대종사가 입적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쌍계사로 급히 향하는 길목에는 조문객들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소승은 고산 스님의 법제자로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다. 선서화전을 개최할 때면 항상 법사로 부족했던 제자를 일일이 큰 행사를 챙기며 이끌어 주었다. 무려 30여 년 동안 남해를 시작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행차하며 언제나 선화와 선필을 독려하며 격려와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 고산 혜원 대종사는 영원히 원적(圓寂)에 들었다.

고산 스님은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지리산 무쇠소이자 호랑이였다. 1933년 울주에서 태어나 9세에 입산 출가했으며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선원 등에서 화두를 붙잡아 정진하면서도 경전과 율장을 놓지 않았다. 1972년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고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불사를 통해 교구본사로서의 사격을 갖췄다. 부산혜원정사, 부천석왕사, 연화도연화사 등을 창건해 도심 포교의 메카로 포교 토대를 마련했다.

스님은 엄격한 수행자이면서도 거칠 것 없는 열린 마음의 큰 스승이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천하의 총무원장' 자리를 박차고 낙향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은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물으면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세상사가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져 있어 힘겨워하는 이가 너무 많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살아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큰스님의 가풍이 있다면 '불식촌음(不息寸陰)'이다. '한시도 수행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 촌음을 아껴가면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라'는 '고산가풍'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경률론(經律論) 삼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로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스님은 호박 키우는 재미를 아느냐며 제자를 붙들고 밭으로 향했다. "한 구덩이에 호박 한 줄기에 다섯개씩 다섯 줄기면 5곱하기 5해서 25개, 이걸 다시 열 차례 따먹으면 한 해가 가는 법, 어찌 사람들이 이 재미를 잘 몰라해. 껄껄껄."

망운사에서도 농사짓기를 권해서 재미를 붙이라고 당부했다. '일일부작(日日不作) 일일불식(日日不食)'을 되새겨 보며 스님을 떠올려본다. 항상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라 했다. 내가 먼저 깨달아서 남을 가르치라는 뜻이다. 스승은 임종게에서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제자 소암 성각 돈수 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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