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기쁨.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현악기. 낮에는 회사원, 저녁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다.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그중에서 '김해 율하밤툴오케스트라'를 소개한다.

◇ 생애 첫 비올라 연주

김해 율하에서 명성제면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김지선(47) 씨. 아이들에게 악기를 접할 기회가 될까 싶어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문을 두드렸다. 어른도 할 수 있고, 악기를 처음부터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두 자녀와 함께 단원이 됐다.

"제가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니 지금도 신기해요. 저는 어릴 적 피아노도 한 번 쳐보지 않았어요. 종이 건반 위에 손가락을 놓고 흉내를 내던 게 전부였죠. 비올라라는 악기를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손끝에서 소리가 나다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을 못 하겠어요."

사춘기인 딸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까 함께 갔던 곳에서 갱년기를 맞은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인 아들도 같이하는데 집에서 셋이서 한바탕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 김해 율하밤툴오케스트라가 클라우드베리 농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율하발전협의회
▲ 김해 율하밤툴오케스트라가 클라우드베리 농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율하발전협의회

◇ 퇴근 더 즐거운 이유

정경선(46) 씨는 유일한 남성 단원이다. 물론 10대 단원 중에 남학생이 있기는 하다. 그는 LG전자에 다니며 7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동네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한다는 펼침막을 보고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꿈에 그리던 합주를 이웃들과 하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갇힌 공간에서 혼자 소리만 내고 듣다가 열린 공간에서 여럿이 화음을 쌓는 순간은 잊을 수가 없네요. 어른들이 악기를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보다 더 소통하는 법을 몰라요."

그는 월요일과 수요일을 기다린다. 이날은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합주가 있는 날이다. 퇴근 후 쏜살같이 연습 장소인 클라우드베리 농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12일부터 단체 연습이 잠정 중단됐다. 코로나가 그저 얄밉다.

◇ 18년 만에 다시

단원 중 연장자에 속하는 인물인 김애숙(64) 씨. 20년 전 우연한 기회에 첼로를 2년 정도 배웠다. 나이를 먹고 다시 할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교회당 연주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밤툴에 합류했다.

"코로나 상황서 우울감을 느끼는 주변 사람들이 참 많아요. 감사하게도 밤툴을 알게 돼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제 마음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2주 전에 파트별 합주를 하는데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올라오더라고요. 눈물이 날 뻔했는데 참느라 애를 먹었어요."

청소년 단원인 박아연(15) 양도 "학교 마치고 학원 갔다가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는데 악기를 배우니 즐겁다"며 "처음 보는 이웃 동생은 같은 학교 후배였고 나머지 중학생 3명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서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 김애숙 씨.  /율하발전협의회
▲ 김애숙 씨. /율하발전협의회

◇ 경남문화예술진흥원 4곳 선정 지원

김해 율하밤툴오케스트라는 율하발전협의회가 이끌고 있다. 창원대 외래교수인 지휘자 한정훈 예술감독을 비롯해 5명의 악기별 전문강사도 함께하고 있다. 강사 중에는 창원시향 단원도 있다.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처음 시작한 사업으로 공모결과 4곳을 뽑아 각각 3700만 원 도비를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3곳은 경남함께하는여성회 위투게더(창원), 협동조합 마르떼(김해), 동호회 거예모(거제)가 주축이다. 전문 예술인이 아닌 일반 도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사업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영신 문화기획자는 '밤툴'이라는 이름을 짓고 김해 율하 주민과 만나고 있다. 율하라는 동네 이름은 밤 율 아래 하, 밤나무 아래라는 뜻이다. 밤툴오케스라에서 밤(balm)은 우리말로 위안·아늑함을 나타내며, 툴(tool)은 도구·수단을 말한다.

그는 "참여자 개인에게 자존감을 일깨우고 공동체 안에서 문화예술 복지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5월 열리는 연주회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주민들. 악기를 배우니 이웃도 보이고 동네가 새롭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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