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주민, LH 투기 의혹에 더 분노
공기업 비리 여전하면 확실히 개혁해야

나는 세입자다. 집주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매달 꼬박꼬박 LH에 월세를 낸다. 나는 공공임대 주택에 산다.

몇년 전 LH청약센터 분양임대 모집 공고를 수시로 확인하다 마침 알맞은 조건의 임대 공고를 발견했다. 무주택 10년 이상에 묵혀둔 청약저축이 있었고, 소득이 높지 않은 나는 자격조건이 충분했다. 1인 가구여서 후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수년간 원룸을 전전했지만, 나보다 공공임대 주택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신청을 망설이기도 했다.

예비입주자 선정 문자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대기 순번 20번에서 한 자릿수로 줄어갈 때마다 기대에 부풀어 설렜다. 2019년 가을, 나는 공공임대아파트 입주민이 됐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해온 나에게 공공임대 주택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나라(국가) 덕을 보다니' 고마웠다. 후배들에게 청년·신혼부부 임대 제도를 홍보하며 적극 추천했다. 최소한 집주인 눈치볼 일은 적을 것 아니냐며.

최근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신도시에 땅 투기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 허무했다. 아무나 알 수 없는 고급정보(?)를 쥐고 돈놀음하며 땅 투기라니, 가진 자들이 더했다.

특히 며칠 전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공개한 전수조사 자료는 분노 조절이 필요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간 공공임대·공공분양 주택에 계약한 LH 직원이 1900명이었다. 공공임대(279명)보다 공공분양(1621)이 많았다. LH는 "직원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청약 자격을 갖춘 경우에 한해 신청·계약이 가능하다"며 별도의 특혜를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과연 그럴까?' 의심부터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입주자로 선정될 때까지 몇개월을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던가. '꼬우면 이직하라'는 조롱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무리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이지만, 이런 쌍팔년도 비리가 여전하다면 이 조직은 땅을 갈아엎듯이 확실히 뒤집어야 한다. 정부가 토지 소유·처분을 공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관련 법을 통과시킨 게 1989년이다. 30년이 지나도록 뭐가 달라졌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동의한다. 그는 한국 부동산 문제를 진단하면서 해결책으로 공공임대 주택 비율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국 공공임대 주택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8% 정도지만 유럽 복지국가인 덴마크(20%)나 네덜란드(35%)에는 크게 못미친다고 지적했다. 신도시 주택을 공급할 때 판매용 70%를 임대용 주택 비율이 더 높도록 역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임대 주택 비율을 높여 내 이웃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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