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대학 졸업도 전 극단 창단 "사명감? 한 시절 객기"
1996년 전국연극제서 '단체 삭발'…대통령상 수상에 한몫
연출·연기 50주년 기념 낭독극 〈고모령에 달 지고〉 17일 공연

이상용(70) 극단 마산 대표가 연극인생 50주년을 맞아 오는 17일 오후 5시 마산문화예술센터 시민극장에서 낭독극 <고모령에 달(月) 지고>(연출 최성봉)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이 대표가 마산 예인(藝人)들의 단골 선술집 '고모령'에서 영감을 받아 극을 썼고 지난해 부산에서 초연됐다. 극 속 등장인물인 선술집 주인 문자은 여사와 '땡초'라는 별명을 지닌 허청륭 화백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이번 무대는 후배 연극인 송판호(땡초 역), 김수희(문여사 역), 김위영(해설)이 함께한다.

인생은 연극과 같다고 했던가. 이 대표가 그간 농담처럼 건넨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영문과에 입학했고 또한 아무 영문도 모르고 연극을 시작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1971년 경남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한 첫해 연극을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시작해 도내 현역 최고령 연극인이 됐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운명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이 대표를 연극판으로 이끈 장본인은 배덕환·한기환 교수다. 연극의 '연' 자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영어연극을 무대에 올리자고 했던 게 발단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를 허용하지 않아 공연은 무산됐지만 이후 이 대표는 대학생활 내내 연극에 푹 빠졌다.

그는 1971년 첫 연출작이자 출연작인 <부부>를 시작으로 마산 연극의 초석을 놓았다. 1932년 마산 최초 극단 '극예사'와 극예사 후신인 1934년 극단 '표현무대' 이후 극단이 없던 시기 이 대표는 대학졸업식을 앞둔 1975년 극단 '마산 카페 떼아뜨르'를 창단했다. "그때 내가 극단을 만든 것은 무슨 사명감에서라기보다는 한 시절의 객기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표의 성격은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또 일단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인다.

이 대표가 꼽은 연극인생 중 가장 기뻤던 순간, 지난 1996년 극단 마산이 경남연극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성격이 한몫했다.

▲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1971년 경남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한 첫해 연극을 시작했다는 그는
▲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1971년 경남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한 첫해 연극을 시작했다는 그는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연극처럼 굴곡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1985년부터 극단 마산 대표를 맡은 그는 "이번 연극제에서 우리 극단이 대통령상을 받지 못하면 기회는 영영 없다"며 공연 시작 전 승부수를 던진다. 바로 삭발식. 구도에 몸부림치는 산사 스님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 맞게 대표와 단원이 솔직한 연극을 보여주자며 삭발을 한 것이다.

당시 전국연극제가 열린 광주지역 매체들이 대서특필했고 경남지역 언론사도 '경남연극 한 풀었다', '경남연극인 14년 소망 이루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가 많이 붙는다. 전국 최초 국제연극제인 '마산국제연극제'의 전신 '경남소극장축제'를 1989년 열었다. 제26회 마산국제연극제가 열린 2014년까지 전국의 내로라하는 연극인들이 마산에 모였고 외국 극단이 경남을 찾았다.

세계연극협회가 1952년 창립된 이후 55년 만인 200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연극총회 및 세계연극제'를 유치했다. "국제행사 유치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인 줄 몰랐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콩알보다도 작은 도시인 마산, 창원에서 개최하겠다고 나섰으니… 모르면 겁이 없다고 했던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극인으로 성공 가도를 달린 듯 보인다. 하지만 연극도 막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듯 우여곡절도 따랐다.

20년 넘게 열리던 마산국제연극제는 보조금 부당집행과 정산서류 미비로 창원시, 경남도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중단됐다.

연극을 해서 돈을 벌기는커녕 집에 빚을 안겼다. 옆에서 오랫동안 지지를 해주던 부인이 암에 걸렸을 때 여느 때보다 마음이 아팠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7년 귀중한 연극자료가 있는 마산연극관까지 불에 타 망연자실했다. 마산연극관은 이 대표가 사비를 털어 지난 2012년 개관했다.

"그간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연극처럼 굴곡이 많았다. 배덕환·한기환 교수를 만난 것은 '연극으로의 긴 여로'의 출발점이고 1971년 한하균 선생과 인연을 맺은 뒤 연극과 많은 예인을 알게 됐다. 아낌없이 지원을 해 준 최광주 광득종합건설 회장과 김동구 변호사, 그리고 연극후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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