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창녕 터 잡고 자연 몰두
화왕산·우포늪·낙동강 담아내
최근 지리산 폭포 물줄기 열중
"돈·명예보단 작가 정신 추구"

서양화가 강복근(63) 씨는 올해로 38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붓을 손에 쥔 뒤로 대부분 고향인 창원에서 작업해왔다. 그러던 그가 3년 전부턴 창녕에 화실을 내고 작업 삼매경에 빠져있다. 집도 작업실 근처로 이사했다. '자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온 그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는 최적의 장소가 창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창녕은 식물 800여 종과 조류 209종, 어류 28종, 포유류 17종 등이 서식하는 국내 최대 내륙 습지 '우포늪'이 있는 곳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8일 오후 4시께 창녕군 부곡면 작업실에서 밤낮으로 작업에 몰두 중인 강 작가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작품세계를 들어봤다. 50평 정도 되는 화실 바닥 곳곳에 놓여있던 근작들도 이날 만났다.

▲ 강복근 작가가 지난 8일 창녕군 부곡면 작업실에서 붓 끝으로 물줄기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그는
▲ 강복근 작가가 지난 8일 창녕군 부곡면 작업실에서 붓 끝으로 물줄기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그는 "그리고 싶은 그림이 많다. 그걸 풀어내는 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작가는 군 복무를 마치고 25살이 되던 1983년부터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남다르다고 느낀 뒤로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 묵묵하게 같은 길을 고집하고 있다. 밥벌이하려고 창원 상남동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거나 미술 강사로 활동한 적은 있었지만, 그럴 때도 개인 작업을 손에서 뗀 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났다. 그게 내가 태어난 목적이다."

스스로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남들이 머릿속에 있는 형상을 어렵게 꺼내거나 꺼내지 못할 때, 작가는 붓을 들고 종이 위에 쓱쓱 자신의 세계를 그려낼 줄 알았다. 미술대회만 나갔다 하면 상을 곧잘 탔고, 못해도 상위권엔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항상 높은 등수에 이름이 걸리니까 그림을 그리는 게 즐거웠다. 자연스레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작가로 이어졌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붓을 살 돈도, 캔버스를 살 돈도 없었다. 작가가 되더라도 생계 유지비를 충당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꿈을 접었다.

"집이 가난해서 미술을 할 수 없었어요. 돈이 많이 들잖아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군대에 간 다음에 이런 판단이 서더라고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요. 어떤 끌림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남이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의 끌림이라는 게 내적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한 25살부터 늦은 나이에 그림 그리게 됐어요."

▲ 강복근 작 '자연, 자생, 자아'. /강복근 작가
▲ 강복근 작 '자연, 자생, 자아'. /강복근 작가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미술 재능이 "타고났다"고 말한다. 이런 확신과 깨달음 때문에 돈이 발목을 잡아도 손에서 놓을 뻔했던 꿈을 끝내 놓지 않았다. 다른 길을 가본 적도 없다. 3년의 군 생활을 마친 이후 창원대와 중앙대에서 미술을 전공해 학·석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언어 장벽에 부딪혀 박사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2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는데, 그 뒤로는 줄곧 자연을 주제로 작업해온 그다. 창녕 화왕산과 우포늪, 낙동강 일대 풍경 등을 화면에 빚어왔다. 최근에는 지리산 폭포의 물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원래는 지리산으로 집과 작업실 모두 옮길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려니까 산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겠더라고요.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 건데, 그래도 여긴 마트도 있고 편의점도 있거든요. 필요한 재료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배가 와요. 지리산은 오지 않잖아요. 여기선 재료를 살 수 있는 상남동까지 차를 끌고 1시간이면 갈 수 있어요. (웃음)"

그는 창녕에 온 지난 3년을 포함해 30여 년의 작가 경력이 '숙성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도 내일도 모든 게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힘들었던 경험은 담아두지 않고 툭툭 털어낸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지 물어봐도 그에게서 "없다"는 답만 돌아오는 이유다. 온종일 작업 생각뿐인 그의 머릿속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과 의지로 가득하다. 그 생각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완성도 높은 작품, 누가 보더라도 빠지지 않는 작품,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놓기 위해 앞으로 달려간다.

"자신을 완성하는 지점까지 가고 싶어 하는 작가, 그런 욕심을 가진 작가를 보고 '작가 정신'이 있다고 해요. 그런 작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작가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돈이나 지위, 명예 이런 거를 좇아가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저의 정해진 길을 갈 생각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갈 거예요. 그리고 싶은 그림이 많아요. 그걸 풀어내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 강복근 작가. /최석환 기자
▲ 강복근 작가. /최석환 기자

마치 구도자처럼...그림, 나를 찾는 여정

■ 작가의 작업노트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그림을 언제부터 그리셨나요?", "왜 그림을 그리시게 되었나요?" 저의 답변은 단순합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서 그리게 되었다고 말이죠.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빈 곳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은 선한 마음도 자리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을 그림으로 끌어내고 싶었어요.

자연은 해마다 그대로인데, 사람은 해마다 다르게 변해가잖아요. 그림 그리는 건 그런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생하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가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죠.

저의 작품 가격이 왜 이리 비싸냐고 묻는 분이 있는데요. 그건 '고집과 집념'의 가격이지요. 밥 먹으려는 사람보다 밥에 먹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잖아요. 자존감을 지키면서 차디찬 모멸과 멸시를 견뎌낸 가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의 그림을 보고 느낀 감동이 있다면 그 감동의 가격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월과 인내의 가격인 셈이죠.

저에게 그림은요. 다른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헤맬 때, 조금 더 높고 넓은 창공을 날고 싶어 하는 갈매기의 꿈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흥분하고 노력하고 스스로 감격하는 종교 같은 것입니다.

소재는 자연에서 빌립니다. 화가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했던 기억의 감성을 끄집어내서 그립니다.

화가의 눈으로 관통하는 생각이 그림으로 나타나죠. 나를 찾고, 나다운 그림을 향해 나아갑니다. /강복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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