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은 가장 오래된 탐욕의 얼굴
착시현상에 생을 소진시키는 일일 뿐

'코로나19'에서 인류를 건져주리라 믿고 있는 '백신'의 효험에 대한 믿음은 거의 '백신(百神)' 즉 전지전능한 신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상처 위에 덧붙이는 '밴드'에 지나지 않으리란 부정론도 있다. 더 큰 걱정은 이른바 '백신 민족주의'의 현실화다.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인도, 미국, 영국 등은 자기 국가 국민 우선주의를 택했다. 영국은 한 사람이 세 차례 접종까지 하면서 사망률이 제로에 가까워졌다는 뉴스까지 나온다. 덩달아서 유럽 우월주의가 되살아나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에 백신 공급을 차단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탐욕의 집단적 발현이다.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능멸하며, 학살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가 그렇다.

백신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어떤 민족적 굴욕이나 희생도 참으면서 애원해야 하게 되고 있다. 탐욕은 권력과 친밀하다. 민주주의든 비민주주의든 모든 정치권력은 탐욕을 실체로 하면서 의회, 선거, 평등, 공정, 복지 등을 정책, 법, 제도라는 이름으로 겉치장하며 권력을 장악하고 탐욕을 채우려 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사실상 공인된 탐욕의 얼굴이다.

특히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술책으로서나 장악한 뒤 유지해가는 방법으로 '이념'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념은 탐욕 실현을 위한 매우 철학적이고도 고답적인 역사를 지닌 괴물이다. 접시에 음식을 담을 때는 접시를 반듯하게 놓아야만 제대로 담을 수가 있다. 그런데 접시를 세워서 음식을 담거나 비스듬하게 하여 담으려고 하면 음식이 모두 흘러내려 버린다. 접시 바닥엔 음식에 섞인 양념의 자국만 남는다.

그런데도 접시에 맛있는 음식이 담겨 있다고 믿는 것이 이념의 실체다. 그러므로 이념은 현실을 보지 못한다. 그 접시엔 음식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인데도 굳이 음식이 제대로 담겨 있다고 믿는 것이다. 탐욕의 범주로는 지상 최고의 맛있는 음식이 담겨 있다고 보면서, 그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고, 예뻐지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접시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음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게 인류에게 이익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탐욕의 착시현상에 생을 소진시키는 일일 뿐이다.

탐욕은 때로 사랑이나 행복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영생,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늙고, 병들며, 죽는다. 그저 저 숲속의 한 그루 나무가 되자.

"사람의 작위적인 것에 몸을 맡기는 사람은 거짓되기 쉽고(爲人使易以僞·위인사이이위)" "하늘의 이치에 몸을 맡기는 사람은 거짓되기 어렵다(爲天使難以僞·위천사난이위)"고 한 <장자, 인간세>를 되씹는다. 작위적인 것의 대표적인 것이 법, 제도, 선거, 정치이고, 하늘의 이치는 곧 '자연'이다.

탐욕은 정치의 얼굴일 때가 가장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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