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메가시티, 주민이 체감해야 성공
지역화폐 통합해 사용범위·혜택 넓히자

1894년 7월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확정적인 시기이자 동학혁명군이 재봉기하기 직전이다. 기관총 앞에 죽창으로 맞섰던 동학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것이 그해 11월이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은 부산에서 제물포, 한성까지 한 달여의 여행을 하고 <1894년 여름, 조선>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의 화폐가 조선에서 꽤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고 기록한다. 일본이 전쟁을 치르면서 조선을 압박해 인부 고용비나 군수품 구입 대금을 일본 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까닭도 있지만 은본위제였던 당시, 경인 지역 조선 사람들은 은 함량이 높고 가치가 안정적인 일본 은화를 조선 돈보다 선호했던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1910년의 공식적 멸망 이전에 이미 조선이 일본경제권으로 통합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씁쓸하기도 한 이 대목에서 '부울경 메가시티'의 현실적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부울경 메가시티'라는 단어는 들어봤지만 부울경 주민 대부분은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개개인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실질적인 이익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정책실현이 가능해지고 정치적 상황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정책의 성공은 정교한 혹은 두툼한 '종합계획서'와 연도별 '실행계획서'가 담보하지 않는다. 캠페인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들부터 실행해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부산시와 경남도, 울산시의 지역화폐와 각종 지원금 등을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통합한다고 생각해보자. 경남도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가 부산이나 울산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진다. 부산이나 울산시민들이 경남 지역 관광지를 찾을 경우 입장료 등에서 '지역 주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바우처 플랫폼이 마련되어 있고 경남도 지역주민 인증을 위한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메가시티는 자치단체장들의 합의서만으로 혹은 대규모 결의대회 등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부울경 주민들이 현실에서 메가시티의 유용성을 느끼고 이를 통해 정서적 일체감이 향상된다면 정치적 상황 변화가 있어도 실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나주혁신도시 사례를 보자. 광주시의 대승적인 양보로 나주에 '광주·전남 혁신도시'가 조성된다. 그래서 전국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한 케이스이다. 2009년 이전이 시작될 무렵 광주시와 전남도지사, 나주시장은 '공동혁신도시'라는 명분을 살려 이전기관들의 지방세를 별도 적립해 3개 지역 공동 발전을 위해서 쓰기로 하고 합의서를 만든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시의회 반대를 이유로 나주시가 지방세로 들어온 세금을 다시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자치단체장들의 소속 정당이 서로 달라졌다. 그 이후에는 협의를 위한 자치단체장들의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당위적 명분과 현실적 이익의 조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요즘 실리콘 밸리 플랫폼 기업들은 '연간계획서'를 공들여 만들지 않는다.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구 용어를 빌리면 'gun and run'식 경영을 한다. 'gun and run'은 사람을 보고 공을 패스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 공을 던지고 사람이 뛰어가는 전술이다. 먼저 저지르는 것이다. 미래는 계획서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저지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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