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간보호센터 다니며 친자매처럼 친해져
"마지막까지 사돈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파"

"내가 어데 학교 문 앞에나 가 봤겠나. 나이 묵고 여기서 사돈들하고 지내면서 잃어버린 학창시절 누리는 것 같데이."

정소순(91·합성동) 할머니는 양옆에 앉은 박성희(84·합성동), 정복선(87·구암동) 할머니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이들은 최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께 창원시 마산회원구 하사랑주야간보호센터에서 건강체조에 몰두하고 있던 세 사람을 만났다.

세 사람은 특별한 관계로 얽혀 있다. 소순 할머니와 성희 할머니, 성희 할머니와 복선 할머니는 각각 사돈지간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사돈이라지만, 세 사람은 매일 만나 손자 사진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성희 할머니는 "사돈끼리 어색한 사람들이 많은데 사부인들이 너무 잘해줘 친정어머니같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소순 할머니는 "사돈 3명이 함께 있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여자끼리 다 통하는 게 있는 법"이라고 웃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은 약 다섯 달 전부터 시작됐다. 소순 할머니는 아들 하영수 씨 부부가 지난해 7월 주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왔다. 같은 집 2층에 살던 성희 할머니도 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함께 지냈다. 복선 할머니는 두 달쯤 뒤 이곳에 왔다. 데면데면한 시간도 잠시, 세 사람은 친자매처럼 친해졌다. 아침에 1명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꼭 확인할 정도다.

▲ 왼쪽부터 박성희, 정소순, 정복선 씨. 세 사람은 각자 사돈 관계로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왼쪽부터 박성희, 정소순, 정복선 씨. 세 사람은 각자 사돈 관계로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창우 기자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소순 할머니는 시가를 챙기고 5남매 뒷바라지를 다 하기까지 학교 문턱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야학에서 한글을 배운 것이 전부다. 그런 할머니는 사돈들과 주야간보호센터 생활을 하며 '학교생활은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래들과 함께 운동하고, 노래하고 놀아본 일이 처음이라서다. 한 주에 한 번씩 소풍을 나가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즐기는 것도 전에는 없던 일이다.

센터 차량은 매일 오전 동네를 돌며 11명의 노인을 태우고 왔다 오후 6시에 다시 집까지 모신다. 손뼉치며 숫자 기억하기, 풍선테니스, 투호 놀이, 노래교실 등 매일 짜인 교육 활동을 따라가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성희 할머니는 "코로나19 때문에 경로당도 못 가고 집에 있었을 땐 외롭기도 하고 몸도 처져 있었는데, 이젠 사돈들과 운동하고 놀이할 생각에 아침마다 눈이 일찍 떠진다"라고 말했다. 복선 할머니도 "경로당은 알고 보면 파벌도 있고 끼리끼리 노는데 이곳에서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라며 "마지막까지 사돈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영수 대표를 비롯한 5남매는 지난 2018년 소순 할머니 미수(88세)를 맞아 어머니의 삶을 녹여낸 자서전을 헌정하기도 했다. 성희 할머니는 "자기 부모님도 안 모시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준 사위와 딸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하 대표는 "36년간 여행사를 운영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아 주야간보호센터를 열었다"라며 "마산시의원,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으로도 활동할 때도 관심이 많았던 분야라 나한테 딱 맞는 일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돈지간 세 분이 외롭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라며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어, 앞으로 노인복지 개념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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