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퓨전국악 등 장르 확대
변화된 현실 속 미래 의지 표현

▲ 조희창 음악평론가

통영국제음악제가 지난 26일 개막했습니다. 내달 4일까지 열리는 음악제 일부 공연 후기를 전합니다. 첫 번째로 조희창 음악평론가가 전하는 개막공연 이야기입니다. 그는 <소니뮤직> 클래식 담당을 시작으로 월간 <객석> 기자, 월간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장, KBS <클래식 오디세이> 대표작가, 윤이상평화재단의 초대기획실장 등을 맡은 바 있습니다. /편집자주

통영국제음악당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올해도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콘서트홀 계단 끝자락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바다는 여전히 눈부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과 같지 않던 마음은 통영의 바다를 보는 순간 녹아내렸다.

이 봄을 맞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싸워야 했던가. 코로나19는 여전히 위협적이었고, 개막 공연을 맡은 피아니스트 루카시 본드라체크도 건강 상황으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어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도 취소되었으며, 청중의 기대를 모은 정경화의 바흐 공연도 연주자의 왼손 부상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실의 벽이 가로막았다.

그러나 통영은 작년 음악제가 팬데믹이라는 파도에 속절없이 무릎 꿇던 경험치로 무장하고서, 올해의 주제를 <변화하는 현실>(Changing Reality)이라고 못 박았다.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미래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일단 공연 장르를 유연하게 확대한 것이 눈에 뜨였다.

기존의 클래식 레퍼토리를 넘어서 발레를 곁들인 음악극, 퓨전 국악, 재즈 등으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연을 실시간 감상할 수 있게 한 것도 좋은 포석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방송을 위해 무대에 40개의 마이크를 설치하고 3D 포맷으로 음향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마침내 3월 26일 저녁, 2021년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으로 개막의 팡파르를 울렸다.

이 곡은 1979년에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베를린필하모닉이 초연한 곡으로,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멸망을 경고하면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이 곡의 불안하고 긴박한 정서를 잘 표출했다.

이어 김봄소리가 협연하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청중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유명한 곡이지만, 1878년에 이 곡이 처음 작곡되었을 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 명인 레오폴드 아우어마저 마다한 곡이었다. 통영 앞바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청록색 드레스를 입고 나온 김봄소리는 날렵한 기교로 차이콥스키의 난제를 술술 풀어나갔다. 덤으로 들려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인형> 중에 나오는 '그랑 파드되'의 협주곡 버전도 멋진 선물이었다.

2부 순서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비견되는 쇼스타코비치 최고의 히트작이다. 영웅적인 1악장과 풍자적인 요소로 가득한 2악장, 막막한 슬픔의 3악장, 그리고 모든 비극성을 해결하는 4악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곡의 음악적인 성격도 그렇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인생도 이 곡 덕분에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부분적으로 불안하던 금관 파트는 후반부로 가면서 안정을 찾았고, 마침내 피날레가 축포처럼 터지면서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었다.

이 팍팍한 현실의 한 귀퉁이에 좋은 음악, 좋은 무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마치 모든 심란한 것들이 빠져나간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희망'이란 것이 남아 있듯, 통영국제음악제는 우리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할 예술의 세계가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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