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1958년 독일
15살 마이클, 36살 한나와 열애
수년 후 전범으로 법정 선 한나
사랑의 의미 곱씹게 하는 작품
나치 역사 속에 뒤엉킨 삶 비춰

영화를 본 뒤 찡함이 오래갔다.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외로운 시간으로 옭매고 타인, 심지어 자녀에게조차도 마음을 못 열게 만들까. 분명 그 사랑은 짧지만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렬했으리라.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배경으로 15살 소년과 36살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히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적 배경, 책을 읽는 행위, 홀로코스트 희생자 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1995년 남자 주인공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이 1958년 소년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비오는 어느 날, 15살 마이클은 고열로 한 공동주택 입구에서 구토를 한다. 이때 전차 승무원 한나(케이트 윈슬렛)가 젖은 수건으로 소년의 얼굴을 닦아주고 지저분해진 바닥을 정리한다. 그리고 아픈 소년을 말 없이 안아준다. 이때 이미 마이클은 한나에게 묘한 감정이 싹튼다.

성홍열 판정을 받은 마이클은 병을 완쾌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나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둘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마이클에게 첫 사랑은 강렬했다.

'난 두렵지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고통이 커질수록 사랑은 깊어간다. 두려움은 사랑을 증폭시킬 뿐 사회적 편견도 망각하게 한다. 당신의 천사가 되어 행복한 일생을 살도록 하리라.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랑이니라.'(마이클 독백)

마이클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한나는 글을 읽지 못한다. 한 날 한나는 그에게 "순서를 바꾸자. 책을 먼저 읽어주고 사랑을 하는 거야"라고 말했고 마이클은 호머의 <오디세이>, <에밀리아 갈로티> 등을 읽어주었다. 한나는 마이클의 책 읽는 소리에 슬퍼하고 울분을 토하고 감탄한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전차 승무원인 36살 여인 한나(왼쪽)와 15살 소년 마이클이 비 오는 어느 날 조우한다. /갈무리
▲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전차 승무원인 36살 여인 한나(왼쪽)와 15살 소년 마이클이 비 오는 어느 날 조우한다. /영화 갈무리

둘의 사랑은 얼마 가지 못한다. 몇 년 뒤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에서 우연히 한나를 본다. 한나는 20대 때 나치 아우슈비츠수용소 감시원으로 취직했고 명령에 따라 유태인들을 죽음의 가스실로 몰았다. 한나는 다른 동료와 달리 매달 말 60명의 수감자를 선별해 아우슈비츠수용소로 보내줬고 각자 수감자 10명씩을 선별해 가스실로 보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판사가 자기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한나에게 사실이냐고 묻자 한나는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말하는 부분에서 한나의 성격이 드러난다.

동료는 한나가 유태인 몰살 보고서를 단독 작성했다고 몰아가고 판사는 필체 감정을 하겠다고 한다. 한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콤플렉스가 드러날까봐 자기가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마이클은 뒤늦게 한나가 문맹이라는 것을 안다. 마이클은 한나가 죄를 뒤집어썼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봐, 사회적 분위기상, 자존심이 강한 한나에게 상처를 줄까봐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게다.

마이클은 무기징역을 받은 한나에게 글을 깨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를 보낸다. 한나는 글을 조심스레 읽게 되고 마이클에게 "꼬마야, 지난번 책 좋았어", "내 편지 받았어? 답장해"라고 편지를 쓴다. 편지를 받은 마이클의 눈은 눈물이 글썽이고 가슴은 묵묵하다.

둘은 한나가 종신형에서 20년 형기로 감형되면서 결국 재회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해피 엔딩은 없다.

마이클은 한나가 과거를 뉘우치길 바랐다. 하지만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에 한나가 "내 기분은 중요치 않아. 내 생각도 중요치 않지.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까"라고 답하고 "배운 게 있을까 궁금했어요"라는 말에 "하나 있긴 해. 글을 배웠지"라고 말하자 마이클은 실망한다.

중요한 결말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영화 끝 무렵 마이클은 자신의 딸에게 "15살 때였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데 죽을 것처럼 아팠어. 어떤 여자가 도와줬지"라며 마음속 숨겨놓았던 첫사랑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의 콤플렉스를 부둥켜안고 그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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