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 선정 77번 국도…남·서해 아우르는 최장 길이
고성-통영 잇는 풍광 일품…길게 쭉 뻗은 길 운전 편해
면허 딴 지 10년 만의 운전 이토록 즐겁다니!

차를 샀습니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구입한 생애 첫 차입니다. 들뜬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바로 그다음 날 사고를 냈습니다. 주차면 안쪽에 네모반듯하게 주차되어있던 까만색 카니발 앞범퍼를 긁었습니다. 지난주엔 우회전하다가 보도블록을 살짝 긁었습니다. 한 달 새 2번이나 긁고 나서야 운전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빨리 운전이 익숙해져야 할 텐데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리면 '왕초보' 운전 티가 팍팍 나지만, 기사도 쓸 겸 운전 연습도 할 겸 겸사겸사 운전대를 잡고 드라이브를 떠나봤습니다. 제가 사는 창원에서 멀지 않은 동네로 가봤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까 이곳이 경남의 드라이브 코스 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더군요. 해안도로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명소이자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드라이브 맛집, '동진대교가 있는 해안대로'입니다.

▲ 고성군 동해면 장기리 해안도로. /최석환 기자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멋들어진 해안도로

고성군 동해면 외산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창포리를 잇는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동진대교입니다. 경남도가 남해안 관광벨트와 관광 일주도로 개설사업의 하나로 세운 다리입니다. 지난 1995년 공사를 시작해 6년 만인 2001년에 완공됐습니다. 다리가 만들어진 게 2002 한·일 월드컵 개최 한 해 전 일이니까 올해로 다리의 나이가 딱 20살이 되었네요. 바다를 배경으로 도드라진 빨간 교각이 인상적입니다. 다리는 여전히 굳건해 보입니다.

77번 국도가 동진대교를 지납니다. 창원 창포리에서 시작해 고성, 통영을 지나 남해와 서해 해안선을 따라 경기도 파주까지 이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국도입니다. 전체 길이가 1288㎞나 된다는군요. 동진대교에 들어서기 전 창원을 거쳐 남쪽에 있는 고성과 통영으로 뻗어 나가는데, 도로가 바다를 끼고 있어 풍성한 경치가 시선을 잡아끕니다. 다리 주변에선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있는 창원 진동에 속한 섬들이 여럿 보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궁도란 작은 섬이 아기자기해 보여서 좋습니다. 쾌청한 하늘과 구름 떼가 해안도로 풍광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드라이브에 나선 날이 원래는 비 예보가 있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일기예보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라이브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해맞이공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작은 마을이 하나 보입니다. 어선 10여 척이 마을 앞바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둥둥 떠 있습니다. 더 가면 하얀 부표들이 온 바다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들 덕분에 해안도로를 달리는 맛이 더 좋았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 해안도로가 5년 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나 봅니다. 괜히 꼽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고성군 어느 국도 뻥 뚫린 도로 위로 선선한 바람과 바다내음이 실려온다.
▲ 고성군 어느 국도 뻥 뚫린 도로 위로 선선한 바람과 바다내음이 실려온다. /최석환 기자

◇아름다운 길 9.5㎞, 구간 끝나도 곳곳이 '아름다운 길'

'동진대교가 있는 해안도로'는 사실 그렇게 길진 않습니다. 창포리에서 동진대교를 지나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바닷가 언덕에 있는 해맞이공원까지 9.5㎞ 정도입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면 다 둘러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만 보고 돌아갈 순 없겠죠. 그대로 해안도로를 더 달렸습니다. 동진대교 아래를 지나 동해면을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해안도로입니다. 아름다운 길에 꼽히지 않았을 뿐이지, 멋진 풍경이 많습니다.

가다 보니 언젠가 잠깐 들렀던 검포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주변 해안에 낚시꾼들이 많이 오는 모양입니다. 바다 부근에 '낚시 금지'라고 적힌 푯말이 보이네요. 낚시 경험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지만, 이런 곳이라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오래오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진짜로 낚시를 하진 않겠지만요.

어딘지 모를 도로로 천천히 달리다 제주도에서 볼법한 야자수가 2차로 도로 양옆으로 나타납니다. 높이가 3m 정도 될까요. 커다란 나무 틈 사이로 펼쳐진 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게 맛이 괜찮습니다. 뜬금없는 장소에 '바르게 살자'라고 적힌 석상도 보이네요. 과속하지 말고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뜻일까요. 지난해 경남 동네 여행 취재차 다녀간 내산리 고분군도 다시 보니까 반갑게 느껴지네요. 고분군 앞으로 길게 뻗은 2차로 도로가 새삼스럽게 예뻐 보입니다. 그래서 잠시 차에서 내려 도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갔던 기억이 나서입니다. 기억이 오래돼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도 길게 쭉 뻗은 도로가 예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드라이브가 목적이라면 중학교와 초등학교 앞으로 지나는 길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0㎞ 속도 제한이 걸려 있어 살짝 답답하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달려보니 고성 동해면 해안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왕초보가 천천히 다니기 좋습니다. 시간이 없어 이번에 가보지 못한 길이 많습니다. 더 돌아보고 싶은데 이곳저곳 더 다녀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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