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보라봉황
젊은 감각의 새 카페·식당 의기투합 사연 담긴 빈집 활용 공연·전시 나눔
진주 한 보따리 책방 시장
책 사고 사람 보고 동네 마실도 하니 주민들 복작복작 왁자한 웃음꽃 피워

남해 시골영화제나 공실극장이 그랬고, 통영 티 페스타가 그랬다. 동네에서 작은 규모로 열린 이런 행사들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대와 객석이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고, 주최자와 참석자 그리고 관객이 친근하며, 바로 이런 점들 덕분에 그저 우리끼리일지라도 아주 즐겁다는 점이겠다. 이런 즐거움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좋은 토양이 된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헤쳐나갈 힘이 된다. 다음은 최근 꽤 즐거웠던 동네 행사 풍경들이다.

◇김해에서 열린 거리 잔치

일요일인 지난 8일 김해시 봉황동에서 열린 '보라봉황(보이는 라디오 봉황)'이란 이름으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요즘 유명한 봉황동 거리 가게들이 힘을 합해 마련한 일종의 동네 거리 잔치다. 행사 장소가 '할머니 마당'이기에 가게 이름이 참 재밌다 생각하며 찾아갔더니, 진짜 동네 할머니 댁 마당이었다. 큰길에서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야 하는데, 활짝 열어둔 대문이 마치 큰 액자 같았다. 가운데 앉은 공연자와 그를 바라보고 앉은 관중이 그대로 멋진 그림이었다.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했지만 좁은 마당과 옥상까지 사람들이 제법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도 몇 있었다.

이날 공연자는 김해 출신 포크가수 권나무였다. 주말 공연 일정이 빡빡할 테지만, 고향 사람들이 부른다며 기타와 비올라 세션과 함께 부러 4시간을 달려왔다고 했다. 뜻밖에 공연은 마이크 등 음향 장비를 전혀 쓰지 않는 언플러그드였다. 그런데 그게 또 이날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하늘은 높았고, 노래는 맑았고, 사람들은 평화로웠던 공연이었다.

보라봉황은 2일부터 8일까지 봉황동 곳곳에서 진행됐다. 하라식당(서부탕 대각선 맞은편 지하식당), 방하림 마당(서부로스터 옆 골목, 봉황대 아래), 큰나무 아래(거룡빌라 앞 커다란 나무 아래), 미아상회 옥상(낙도맨션, 낭만멸치 맞은편 작은 가게), 카페 봉황 1935(파스타집 빈체로와 수제버거 90bro 사이 카페), 할머니 마당(하라식당 맞은편 좁은 골목길 끝집). 친근한 행사 장소 소개만 들여다봐도 이미 구석구석 동네를 돌아다닌 기분이다. 보라봉황은 행사 기간 하루에 한 장소씩 공연이 펼쳐지는 형식이었다.

▲ 김해 봉황동 골목 안 할머니 마당에서 열린 공연. /이서후 기자
▲ 김해 봉황동 골목 안 할머니 마당에서 열린 공연. /이서후 기자

"봉황동 거리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 새로운 가게가 많이 생겼거든요. 원래 취지는 이런 새로운 가게, 작은 가게마다 음악가 한 팀이 공연을 하는 거였어요. 코로나 때문에 가게들도, 음악가들도 힘드니까 다 도움이 되면 좋잖아요. 그렇게 9월에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재확산으로 장소를 죄다 야외로 옮길 수밖에 없었어요. 대신 동네 유휴 공간을 열심히 찾아서 잘 활용했죠." 행사를 준비한 이 중 한 명인 하라식당 김혜련 씨의 말이다.

할머니 마당을 섭외한 이야기도 재밌다. 실제 이곳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봉황동에서 점잖기로 유명하신 분들이다. 새로 가게를 연 젊은이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주던 분들이셨다. 그런데 이분들이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지금은 빈집으로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원이 깔끔하고 공간이 아담하고 멋져서 소소한 행사를 열기에는 '딱'이라는 생각에 공간을 빌려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봉황동 가게 주인들이 행사를 진행하며 이곳을 활용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작은 공간에서 벌어진 공연이 동네 주민과 거리 방문객들을 위한 것이라면 행사 기간 모던아트라는 공간에서 열린 구문조 작가의 '숍 오너(shop Owner) 장유가도' 사진전은 봉황동 가게 주인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 작가는 봉황동 작은 가게를 대상으로 가게 자체와 가게 주인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실 봉황동 거리 초창기에는 가게가 얼마 없어 서로 다들 알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가게가 거의 100곳이 넘기에 서로 모르는 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어느 가게를 하는지 알고 소통하자는 뜻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

제법 많은 가게가 들어섰음에도 봉황동에는 아직 숨은 멋진 공간이 많다고 한다. 이 동네가 여전히 멋지고 매력적인 이유다.

▲ 지난 7일 진주문고 뒤편 공터에서 열린 평거동 한 보따리 책방시장. /지역쓰담
▲ 지난 7일 진주문고 뒤편 공터에서 열린 평거동 한 보따리 책방시장. /지역쓰담

◇진주에서 열린 책방 시장

지난 7일 오후 1시 30분에서 4시 30분까지 진주시 평거동 진주문고 뒤편 공터에서 '2020 평거동 한 보따리책방 시장'이란 행사가 열렸다.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지역쓰담'이 준비한 행사다. 동네에서 재미난 일을 벌이자며 만든 작은 모임이다. 구체적으로 동네 문화 기획, 동네 역사 기록, 동네 어른 생애사 구술채록 같은 활동을 하고 있고, 할 예정이다.

지역쓰담은 올해 여름부터 '지역에서 읽고 쓰는 즐거움'이란 주제로 책읽기, 필사, 글쓰기 3차례 특강을 진행했고, 소모임 3개를 운영 중이다. 또, 최근 망경동과 평거동에서 '한 보따리 책방 시장'을 진행했다. 돈은 항상 부족하지만, 단체 취지 자체가 활동 자체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회원 모집 문구에는 '돈은 안 됩니다. 가끔은 내 돈 써가면서 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겠다 싶은 분들은 연락주세요'란 말이 들어 있다.

이날 평거동 책방 시장 행사에 앞서 지역쓰담 권영란 대표가 15개 책방 참여자들을 모아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책방 참여자들은 진주, 사천, 창원 등 다양한 곳에서 왔다. 진주문고나 진주에서 유명한 헌책방 소소책방 말고는 각자 모임이나 개인의 취향대로 책방을 열었다. 권 대표는 공지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는 사실 이 행사에 손님이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오늘 참여하신 분들끼리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 지난 7일 진주문고 뒤편 공터에서 열린 평거동 한 보따리 책방시장. /지역쓰담
▲ 지난 7일 진주문고 뒤편 공터에서 열린 평거동 한 보따리 책방시장. /지역쓰담

미리 공지한 참여자 당부 사항에도 이런 문구가 있다.

"기대하지 말고 부담도 갖지 말고, 가볍게 책 구경 사람 구경 하듯이 모였으면 합니다. 책방지기들과 진주문고, 지역쓰담 식구들, 먹거리 부스 운영자와 자원봉사자들 함께하는 분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즐기시라는 게 가장 중요한 공지인 행사. 당연히 행사 분위기는 즐거웠고, 즐거운 분위기 덕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와서 오래 머물렀다. 어떤 책방은 앞치마 주머니가 묵직할 정도로 책을 팔았다. 그래 봐야 책값이 1000∼3000원이어서 전체 판매액이 많아야 10만 원 안팎이었다. 무엇보다 책방지기들은 햇살 가득한 동네 공터에서 오랜만에 왁자한 분위기를 맛봤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긴 했어도 확실히 다들 웃는 표정이었다는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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