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교 융합돼 내려온 굿…마을마다 독특한 풍습 전승
망자 혼 달래는 진도씻김굿…여러 신 초대해 무가 불러
고통 매듭 풀어내는 의식도

굿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당이 음식을 차려 노래하고 춤도 추며 신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해 달라고 비는 무속의 종교의식이다. 오늘날 과학적 사고방식이 팽배하면서 무속은 이제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전통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보존적 가치가 뛰어난 무속은 무형문화재로 선정되어 공연 형태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인류 삶 속에 깃들였기에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 문학 작품이나 영화, 연속극의 소재로 쓰이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물론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지역 곳곳에 당집이 있는 것을 보면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여전함을 엿볼 수 있다.

◇굿의 역사

굿은 오래된 인류 풍습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조선을 세운 이는 제사장이자 임금이었다. 달리 말하면, 제정일치 시대였던 고대사회의 수장은 무당이었다는 얘기다. 육당 최남선의 글에 따르면 '단군이라는 단어는 무당의 다른 이름인 당굴(몽골어에서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몽골에서 무당은 하늘의 영혼과 땅의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참고로 몽골에서는 무당을 '버(남자)'나 '오뜨강(여자)'이라 부른다. 또 무당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당굴'이기도 하다.

고대사회가 제정일치 시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수로왕 탄생신화와 관련 있는 고대가요 '구지가'는 제사장의 주술행위인 주문일 가능성도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 이 표현에서 머리라는 것은 '우두머리' 혹은 '마리' '마루' 등의 단어와 같은 말이며 최고 또는 수장이라는 뜻이다. 마리는 신라왕의 명칭인 '마립간' 형태로, 마루는 '산마루' 등의 단어로 활용된다. 하여튼 오랜 세월 무가의 굿은 불교나 유교 등 타 종교와 결합하고 융합하면서 한반도 인류의 독특한 풍습으로 굳어져 왔다. 굿에 극락왕생을 바라는 불교 의식 행태가 나타나는 점이나 마산의 성신대제 같은 별신굿 등에서 유교적 제의가 행해지는 것이 그 방증이라 하겠다.

◇굿의 종류

목적에 따라 굿의 종류는 다양하다. 먼저 '동제'가 있다. 음력 정월에 지내며 '동신제(洞神祭)'라고도 하는 마을 제의다. 동제는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해 달라고 비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동제는 오늘날 여러 지역에서 놀이의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사천 신수도 경우가 그렇다. 이곳의 동제에는 적구와 적득이라는 인형이 등장해 액막이 연희가 펼쳐진다. 그리고 집안의 재물복과 안녕을 비는 집굿이 있으며 죽은 혼을 위로하는 넋굿, 신내림을 위한 내림굿 등이 있다.

마을굿인 동제에도 여러 굿이 있는데 도당굿, 별신굿, 서낭굿, 당산굿, 산신굿, 대동굿 등이다. 집굿에는 재수굿, 천신굿, 도신굿, 안택굿 등이 있고 넋굿은 진오귀굿, 씻김굿, 다리굿, 오구굿, 시왕굿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 지난 25일 진해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진도씻김굿 고풀이. /정현수 기자
▲ 지난 25일 진해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진도씻김굿 고풀이. /정현수 기자

◇진도씻김굿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넋굿의 일종이다. 하지만, 반드시 망자의 영혼만 달래지는 않는다. 산 사람의 복과 운을 비는 형태도 나타난다. 지난 25일 진해야외공연장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인 진도씻김굿이 펼쳐졌다. 원래 이 굿을 제대로 펼치면 5시간 정도 걸리지만, 이날은 2시간으로 압축하여 진행됐다.

진도씻김굿보존회가 펼친 이날 굿의 특징을 소개한 글을 보자.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하도록 춤과 노래로써 신에게 비는 무속의식으로 의상은 상복 차림이며 망자의 후손에게 망자와 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진도씻김굿 진행 순서

△남도삼현 = 조상님을 청하여 술을 올릴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진양과 굿거리장단으로 구성된다.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산사람의 마음도 풀어주고자 노래하고 연주한다. 이날 장순향 진해문화센터 본부장이 술을 올리면서 굿은 시작됐다.

△초가망석 = 원래 초가망석이 진행되기 전에 '안당'이라고 성주신을 비롯한 가택신을 모셔 굿을 하는 이유를 알리는 굿을 하는데, 이날은 큰방이나 대청마루 등에 따로 상을 차릴 수 없으니 건너뛰었다. 초가망석은 신과 망자를 청하는 굿이다. 당골(무당)은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무가를 부르며 망자의 한을 깨끗하게 씻겨 저승으로 보내고자 여러 신을 모신다.

△손님굿 = 지금은 이 '손님'이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액면 그대로의 의미로 쓰이지만, 예전 천연두가 만연할 때엔 다른 의미로도 쓰였다. '마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워낙 전염성이 강했기 때문에 예우(?) 차원에서 손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다. 주술적 차원에서 비롯된 풍습일 터이다. 손님굿은 이러한 악성 질병을 퇴치하려는 목적으로 펼치는 굿이다.

△제석굿(제석거리) = 제석신은 수명과 자손 운명, 농업 등을 관장하는 신인데, 불교의 제석천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무속신앙에서는 천신의 성격을 띠고 생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나타난다. 주로 환인을 이르는 경우가 많다. 당골은 흰 장삼에 붉은 띠를 가사처럼 두르고 흰 고깔을 쓰고 굿을 한다. 이날 제석거리는 지전춤을 비롯해 판소리 흥부가, 육자배기 흥타령 등으로 펼쳐졌다.

△고풀이 =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를 해치지 못하게 시신을 결박하는 풍습이 있는데 묶은 이것을 '고'라고 한다. '고'는 그래서 이승에서 풀지 못한 매듭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풀이는 매듭을 기둥에 묶어 놓았다가 하나씩 풀어가면서 영혼을 달래는 형태로 진행된다. 고는 또 인고 또는 괴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씻김(영돈말이) = 원래 초상이 나면 시신 옆에서 직접 하는 굿인 '곽머리씻김' 또는 '진씻김'을 한다. 하지만, 시신을 두고 하는 게 아니라 이날처럼 일부러 날을 받아서 하는 굿은 '날받이씻김'이라고 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조상의 한 때문이라 여겨 이를 풀어주고자 씻김굿을 한다. 이날은 코로나 상황도 어서 벗어나고 웃음이 가득하고 좋은 일 많이 생기게 비는 내용으로 굿이 펼쳐졌다. '영돈'은 일상에 쓰이는 돗자리나 밥그릇, 솥뚜껑, 옹기 등을 무속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영돈은 망자의 영혼을 씻겨주는 절차에 활용된다. 예부터 사람의 죽음은 부정(不淨)하다고 여겼고, 이 부정한 영혼은 저승에 곧바로 갈 수 없으니 부정을 씻어줘야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의식이 씻김굿이라 하겠다.

△길닦음 = 길닦음은 망자가 저승길 편안하게 가시라고 하는 굿이다. 고풀이나 씻김을 통해 이승에서의 한이 풀렸으므로 그다음 절차로 극락왕생할 수 있게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 의식에서 쓰이는 길은 원래 안방에서 마당까지 이어지는 긴 무명천이다. 이를 길베 또는 질베라고도 한다. 이 질베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 또는 다리를 상징한다. 이때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질베 위에 노잣돈을 놓으며 축원을 함께 한다.

△종천 = '중천'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대문간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굿청에 모여든 여러 신을 배웅하는 굿거리다. 망자를 보내기 위한 굿판이 벌어지면 그 망자의 넋과 초청한 신들만 오는 게 아니라 온갖 잡귀 잡신이 다 모인다고 여겨 이들을 잘 풀어 먹여 보내고자 배송굿을 하는 것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종천 의식 대신 진도북춤으로 관객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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