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 미용실 운영하면서 고양이 밥 주기·치료 등 온정
유기·학대·도살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 위해 노력
"개체수 조절하면 공존 가능 혐오 말고 함께 살아갔으면"

김해시 해반천로에 있는 미용실 '헤어디자인 샤롯데'에 들어서면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진다. 여러 길고양이와 사람들이 어우러져 온정을 주고받는 모습이다. 미용실 한편은 아프거나 다친 길고양이가 쉬고 치유를 받는 공간이다. 이곳 점장인 김옥빈(47) 씨는 김해동물보호연대 공동 리더다.

◇'캣맘'이 되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 밥을 챙겨준 지는 8년 정도 됐어요." 김 씨는 어릴 적 만났던 고양이를 잊지 못한다. "제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턱시도(까만색에 흰 무늬가 있는 아이들을 그렇게 불러요) 고양이를 집에서 키웠는데, 아버지가 고기를 먹는다고 때리고 나서는 집을 나가 안 돌아왔거든요."

세월이 흘러 8년 전, 한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미용실 근처 화장실 뒤편에서 구조한 고양이였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새끼였는데, 어미가 물고 가다가 흘렸나 보더라고요. 처음에는 고양이 울음소리인 줄도 몰랐는데, 이틀 동안 울어대 옥분이를 키우게 됐죠." '옥분이'는 옥빈 씨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그는 '캣맘'(Cat Mom)이 됐다. 현재 그의 집에는 14마리, 미용실 안팎에는 12마리 정도 고양이가 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기억한다. "심술이, 후추, 까망이, 짱아, 옥분이, 콩이, 일똘이, 찡찡이, 루비, 노랭이, 라운이, 치즈, 삐순이…."

데려오는 길고양이 대부분 치료와 휴식에 집중한다. "엄마나 형제·자매를 잃고 여기로 온 경우도 있고, 얼마 전에는 생림면에서 하수구에 빠져 뒷다리가 마비된 고양이가 구조돼 오기도 했죠. 눈이 안 보이는 아이도 있고요."

얼마 전 안타까운 소식도 전했다. 지난 9월 7일께 가게 인근 주차장에서 '로드킬'(road kill·동물 찻길 사고)이 있었다. 1마리도 아니고 3마리였다.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피하고, 한 마리는 뒷다리가 마비돼 입원했다가 수술을 받았죠." 김 씨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김 씨는 스무 살 때 부산으로 와서 친구와 함께 미용 일을 배웠다. 김해에는 10년 전 미용실을 차리면서 정착했다. 처음에는 길고양이 문제로 이웃과 다툼도 잦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호응을 많이 받는다. 고양이 돌봄이 힘들기도 하지만, 자기 새끼도 아닌데 젖을 먹이거나 구조된 고양이들이 어울리는 모습에 늘 감동한다. '캣맘'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게 중독이에요."

▲ 김해동물보호연대 공동 리더 김옥빈(47.오른쪽) 씨와 홍보대사 이선유(38) 씨가 김해시 해반천로에 있는 미용실 '헤어디자인 샤롯데'에서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 김해동물보호연대 공동 리더 김옥빈(47.오른쪽) 씨와 홍보대사 이선유(38) 씨가 김해시 해반천로에 있는 미용실 '헤어디자인 샤롯데'에서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함께 살아갔으면 해요"

아픈 고양이를 돌보고 사료를 챙기다 보니 한 달에 개인 돈만 150만 원씩 들어간다. 김 씨는 "그래서 제가 저금을 못해요"라며 웃었다. 미용실 앞에 모금함을 뒀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주민이나 손님이 십시일반 지원금을 넣어주기도 한다.

김 씨는 길고양이가 캣맘이 아닌 '우리나라' 소유라고 했다. "말 그대로 길에서 태어났으니까요. 식당에서도 고양이가 없으면 쥐가 들끓으니까 오히려 음식을 내주기도 하잖아요. 인간이 고양이 혜택을 보는 것도 많아요. 너무 싫어하지 말고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우리 캣맘들의 소원이죠."

또 그는 캣맘들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고양이가 살기에 너무 안 좋은 환경이라서 그나마 괜찮은 곳이 집이거든요. 추위를 피할 수 있고요. 길고양이가 죽는 이유 중 1위는 로드킬, 2위가 차량 보닛 아래예요. 겨울철 춥다 보니 여기서 많이 죽어요. 그리고 올해 창원과 김해에서 고양이 사체 훼손 사건이 있었잖아요. 사람이 만져도 가만히 있는 너무 순화한 길고양이가 많아서 악의가 있는 사람들한테 잡힐 수도 있고요. 산에서 살지만 출산이 임박해 개나 멧돼지 등을 피해야 하는 고양이도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죠."

실제로 지난 3월 김해 한 아파트 단지, 6월 창원 마산합포구 교방동 주택가, 7월 창원 의창구 봉곡동 주택 마당에서 고양이 사체 훼손 사건이 잇따랐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5월 김해 대동면에서는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불법 고양이 번식장도 적발됐다. 당시 발견된 고양이만 110여 마리였고, 60대 남성은 7년 전부터 인터넷과 중간 판매상 등으로 고양이를 팔아왔다고 전해졌다. 이 같은 동물생명 경시에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감에서 공존으로

김 씨는 3년째 김해동물보호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개설한 밴드 '김해동물보호연대'는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개와 고양이 유기·학대·도살 금지법이 제정되는 그날까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여기에 가입한 인원만 600명이 훌쩍 넘는다. 리더 1명과 공동 리더 3명이 있다. 김 씨는 공동 리더 중 한 사람이다.

길고양이가 급증하다 보니 개체수 조절을 위해 김해시 등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길고양이 중성화사업(TNR)을 하고 있다. 김해는 기존의 연간 300마리 정도에서 내년부터 500~1000마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또한 다른 지자체 사례를 보고 타당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김해동물보호연대는 이런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힘써왔다. 중성화사업은 직접 맡아왔는데, 김 씨도 여기에 공감해 활동을 함께하게 됐다. "개체수를 조절해야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해 살아갈 수 있거든요."

회원들은 김해 시내와 장유·진영 등 지역까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서울 복날 개 식용 반대 집회, 대구 칠성 개시장 폐쇄 요구 집회 등에도 참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못 했지만, 한 해 2~3차례 모임도 해왔다. 앞으로 법인화해 시민연대를 꾸리는 구상도 하고 있다.

경남도는 10월부터 전국 첫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를 시행했다. 경남수의사회와 마련한 진료비 표지판은 창원지역 동물병원 70곳에 설치됐다. 초진료·재진료, 개·고양이 예방백신, 심장사상충과 내·외부 기생충 예방약, 흉부 방사선, 복부 초음파 등 다빈도 진료 20개 항목 비용을 볼 수 있는 이 제도는 2022년까지 도내 모든 시군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김 씨도 공감하는 제도다. "동물을 많이 버리는 이유 중 하나가 병원 진료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거든요. 나아가 동물도 사람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으면 하죠. 중성화 수술은 마리당 33만 원이 들어요. 이걸 길고양이는 10만 원 선에서 해주는 병원을 지정하자는 제안도 나온 적이 있는데, 김해에서 실현했으면 하고요."

길고양이 치료, 입양, 안락사 등을 전담하는 동물병원과 같은 공간을 꿈꾸기도 한다. "아프면 버리기도 하지만, 중간에서 사고파는 일도 없어야 해요. 앞으로 10~20년 정도 흐르면 독일이나 영국, 일본 등 동물보호 체계가 잡힌 나라처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쯤이면 길고양이와 유기견도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요. 고양이는 사람이 안 보는 데서 죽는다고 해요. 우리가 고양이 사체를 못 보잖아요. 자연스레 썩어서 인간의 몸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길고양이 한 마리라도 더 입양을 갈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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