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멈춘 듯이 정겨운 '구거리'
책방·소품점·파스타집 곳곳에
차로 5분 더 가면 죽방렴 닿아

남해에 가면 자주 멸치쌈밥을 먹었다. 상추에 흰 쌀밥을 한 숟가락 올린 뒤, 집게손가락만 한 멸치를 툭 올려 볼이 터질 듯이 먹는 그 맛이 참 좋았다. 이 멸치쌈밥을 먹으러 지족해협을 품은 삼동면에 갔다.

삼동면소재지 중심을 지나는 동부대로 1876번길. 주민들은 '지족 구거리'로 부른다. 멸치쌈밥집이 몰려 있는 남해삼동우체국과 삼동면사무소를 지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오랜 거리 풍경이 시작된다. 남해를 여러 번 갔건만 이 거리는 낯설었다. 하지만 왕복 2차로 도로, 그 옆으로 뻗은 오래된 건물들, 그리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가로수길을 걸으니 낯섦은 생각보다 빨리 없어졌다.

지족리가 있는 삼동면(三東面)은 동쪽과 북쪽, 남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창선대교로 이어진 창선면, 서쪽은 이동면과 접한다. 주곡작물 재배와 수산업이 활발하다. 남해의 별미 죽방멸치를 잡는 죽방렴(竹防簾)이 삼동면과 창선면 사이 지족해협에서 행해진다.

지족마을 구거리는 오래전 모습이 그대로 유지돼 시간이 멈춘 동네 같다. 주민들만 오갔던 동네에 서울이나 부산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아기자기하고 재밌는 공간을 만들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었다.

▲ 꽃 공방 플로마리에서 본 지족마을 거리. /이서후 기자
▲ 꽃 공방 플로마리에서 본 지족마을 거리. /이서후 기자

독립서점 아마도책방, 소품가게 초록스토어, 꽃공방 플로마리, 파스타가게 씨어너볼(sea in a bowl) 등이 그곳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남해에 정착한 박수진 씨가 만든 아마도책방은 '너와 나, 우리를 어루만져주는 곳'을 지향한다.

독립출판물, 소규모 출판물, 아마도책방 자체 제작물을 판다. 책방을 둘러보면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책 배치와 취향이 묻어난다. 책방을 방문한 이들도 주인장의 마음을 느꼈나 보다.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애정 가득한 동네 책방.",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야 할 곳.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책 냄새와 포근한 책방 분위기가 느껴진다."(방문자 리뷰 중)

초록스토어는 엽서, 사진, 연필, 면가방, 아트상품 등을 판매하며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녹색과 노란색, 갈색 등이 감각적으로 섞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젊은 층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방, 이용원, 한약방, 사진관, 중국집, 비디오숍 간판은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과 맞아떨어진다.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에서 복고풍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추어 디스코를 추고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이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지족마을 구거리는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네다.

▲ 뉴스타 사진관./이서후 기자
▲ 뉴스타 사진관./이서후 기자
▲ 정다방. /이서후 기자
▲ 정다방. /이서후 기자

1982년 영업을 시작한 정다방(카페정)은 '다방'이 생소한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시어머니 뒤를 이어 다방을 운영 중인 주인장은 아직도 커피 배달을 한단다. 다방커피, 냉커피, 연유커피, 생강차, 율무차, 미숫가루 등 요즘 카페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메뉴를 판다. 다방 한편에는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초록색 티와 모자, 커피 배달을 갈 때 사용하던 보자기 등이 전시돼 있다.

지족마을 구거리에서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2010년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된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을 볼 수 있다. 죽방렴은 대나무 발 그물을 세워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물때를 이용해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이다.

죽방렴을 가로질러 걷다 보면 바다 위의 섬 '농가섬'이 있다. 입장료 3000원을 내면 차를 마시며 잘 관리된 정원을 눈에 품을 수 있다.

 

지족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때가 돼야 일어난다'는 사자성어다. 만나고 헤어짐에는 다 때가 있다는 뜻을 가리킨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무언가에 푹 빠지는 '인연'도 적절한 때가 있는 것 같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기도 하고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에서 꽃 공방 '플로마리'를 운영 중인 남미아(40) 씨의 경우도 그렇다. 남해 지족마을 구거리 분위기에 푹 빠져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남해로 귀촌했다. 벌써 남해 군민이 된 지 '5년 차'가 됐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남해로 여름 휴가를 온 적이 있었는데,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져 있는 지족마을 구거리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이후로 남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게 돼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내려왔다."

남해에 정착한 지 5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그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까. 지족마을만의 장점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2층을 넘는 건물이 거의 없다. 우리 건물만 2.5층 정도고 나머지는 거의 2층을 넘지 않는다. 한적한 동네 풍경이 정말 예쁘다. 처음 남해에 왔을 때보다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서로 경쟁하고 서로 싫어하는 분위기가 여기는 없다. 경쟁이 없는 곳이다. 동네 어르신들도 정말 잘 챙겨주신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지금도 이곳이 너무 좋다."

플로마리 건물 맞은편에서 만난 '뉴스타 사진관' 이양규(76) 대표는 지족마을에서만 47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남해 출신인 그는 50년 경력의 베테랑 사진작가다. 지난 1973년에 사진관을 연 이후 몇 차례 장소를 옮겨 다닌 끝에 플로마리 길 건너편에 있는 지금의 터에 정착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잘나갈 때는 동네 회갑과 결혼식 등 삼동면 등지에서 열리는 행사 80~90%를 도맡아 사진 촬영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70~80년대에는 일이 정말 많았다. 새벽 2~3시까지 일을 하기도 했었다. 낮에는 촬영하러 다니고 밤에는 연필을 길게 깎아서 필름을 수정하고 그랬다. 요즘은 포토숍으로 사진 작업을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연필로 필름을 수정하고 밤 12시에 인화했다. 당시에는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 몰랐다. 수억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정도는 됐다. 요즘은 디지털로 바뀌면서 일이 뜸해졌다."

잘나가는 사진관 대표로 있으면서 마을의 숱한 변화를 목격한 이 대표는 30년 전 마을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도시 개발 목적으로 '소도읍 가꾸기'가 진행된 뒤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때 바뀐 모습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비포장도로, 초가집, 돌판으로 지어진 슬레이트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도읍 가꾸기 이후 마을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그때 모습과 지금이 크게 다르진 않다. 마을의 장점을 꼽자면 자연재해가 별로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태풍이 오면 배들의 피항지가 이곳이었다. 마을이 경사져 있어서 물에 잠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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