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역사·문화 담은 관동공원, 기둥 위 지어진 고상 건물 복원
하천변 산책로에 카페거리 형성…개성 가득 동네책방도 곳곳에

장유 지역은 김해를 대표하는 신도시입니다. 아파트 가득한 도심에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도시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둘러볼 만한 곳이 제법 생겼습니다. 특히 도심을 안고 흐르는 율하천은 한때 생활하수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지금은 장유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심 휴식 공간입니다. 율하천 산책로만 따라 걸어도 계절 따라 변하는 도시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고대 도시와 신도시

이번 산책은 관동공원에서 시작합니다. 장유 지역은 도심 곳곳에 공원이 많습니다만, 특히 관동공원에는 장유 지역의 오랜 삶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게 있지요.

우선 장유라는 이름은 김해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을 때 같이 온 공주의 동생 장유화상(허보옥)이 장유사(長遊寺)를 세우고 머물렀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했습니다. 장유 지역에는 가야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아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증거가 장유 신도시를 만들면서 진행한 문화유적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주거지 흔적과 지석묘 등이죠. 그리고 6세기 후반에서 7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주거 유적도 발견됩니다. 물론 이 시기는 금관가야가 신라로 통합이 진행된 때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가야문화는 그대로 남아 있었을 테지요.

관동공원에는 이때 발견된 가야시대 주거 유적을 복원한 건물들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얼핏 잘 보이지 않는데, 막상 공원 안으로 쑥 들어가 보면 복원 건물을 제법 여러 채 지어 놓아 마을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반지하 건물인 큰 주거지가 있고, 나머지는 기둥 위에 지어진 '고상 건물'인데, 5채가 있습니다. 고상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벼농사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쌀 같은 곡식을 저장하던 곳으로 추정합니다. 바닥 습기와 동물, 해충을 피해 기둥을 세워 땅보다 높이 해서 지은 것이죠.

관동공원 고상 건물은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 복원된 건물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특히 고상 건물과 그 너머로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의 대비가 선명해서 마치 고대 도시와 현대 도시를 비교하는 것 같은 풍경이네요.

▲ 장유 관동공원에 복원된 고상가옥. /이서후 기자
▲ 장유 관동공원에 복원된 고상가옥. /이서후 기자

굳이 유적이 아니라 관동공원 자체도 조용하고 한적하게 나들이하기 좋습니다. 도심 주택가에 이 정도 큰 공원이 있는 것도 흔하지는 않습니다. 도시 조성 초기보다 나무들도 제법 울창해져서 이제는 숲 느낌이 제대로 납니다.

공원 주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가 아이들과 공원 나들이를 하며 적은 글을 살짝 살펴보면 그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늘에서 책을 읽다) 좀이 쑤신다 싶으면 하늘을 본다. 이 나무, 저 나무의 뒷면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잔잔한 바람이 불면 시원해서 고맙고, 잎의 앞이 보이면서 공간 전체가 신선해진다. 그러면 여기가 동네 공원이 아니라, 다른 풍경 속으로 들어온 느낌도 든다. 그렇게 잠시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숨은 풍경을 찾아서

관동공원에서부터 율하천 산책로를 따라 길게 카페 거리가 형성돼 있습니다. 지금은 유명한 브랜드 카페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신도시인 만큼 작고 아기자기한 곳보다 주인 개성에 따라 다양한 공간 연출을 한 게 매력입니다. 특히 율하천을 바로 낀 카페들은 하천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 자리가 인기죠.

요즘에는 잘되는 곳만 잘된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굳이 율하천 바로 곁이 아니라도 이 주변 거리를 가만히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멋진 풍경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마다 조경과 가로수가 제각각 어우러져 한적한 곳은 한적한 그대로 좋은 동네입니다. 또, 골목들을 돌아다니다 평소 보지 못한 멋진 카페나 식당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죠.

▲ 율하천에 있는 동네책방 '숲으로 된 성벽'. /이서후 기자
▲ 율하천에 있는 동네책방 '숲으로 된 성벽'. /이서후 기자

이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공간 중 동네책방과 갤러리를 살펴볼까요.

먼저 관동공원에서 북쪽으로 두 골목만 지나면 '휴 갤러리'가 있습니다. 작은 갤러리지만 천장이 높아 실제 들어가면 공간감이 좋습니다.

상업 갤러리이긴 해도, 전시들이 꽤 진지하고 재밌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여름에 연 '씨즘 쇼룸'이란 전시는 갤러리를 마치 가구 매장처럼 꾸미고 작품마다 가격표도 붙였습니다. 순수예술 작품이 상업공간에 배치되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실험 같은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강현주 휴 갤러리 대표가 이런 말을 했었죠.

"갤러리라더니 결국 망하고 가구점이 됐구나 하고 반응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앞으로도 사고와 형식의 틀을 깨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다."

관동공원과 관동교 사이 하천변에는 동네책방 '숲으로 된 성벽'이 있습니다. 카페나 식당 같은 상업 공간 사이에 자리한 숨통 같은 곳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부자가 되는 자기계발서나 수험서, 참고서 같은 책은 없습니다. 대신 문학 책이 제일 많고, 에세이와 아이들 그림책으로 서가가 채워져 있습니다. 독서 모임도 하고, 자주 유명 저자를 모시고 강연도 엽니다.

▲ 율하천에 있는 '휴 갤러리'.  /이서후 기자
▲ 율하천에 있는 '휴 갤러리'. /이서후 기자

"일단은 경치가 좋고요, 하하. 아내가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열고 싶어 했어요. 직장을 그만두면 같이 서점을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제가 먼저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서 일단 먼저 서점을 열었어요."

책방지기 장덕권 씨 이야기입니다.

율하천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한데 '숨북숨북'이란 동네책방도 있습니다. 사방이 온통 유리로 된, 천장이 높고, 화분이 가득한 독특한 책방이죠. 장유 지역에서 유명한 맘 카페를 운영하는 오지아 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카페 겸 서점이면서 수업도 하고, 강연도 하고, 모임도 하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죠.

◇여기도 둘러볼 만해요

율하천 카페거리 중간즘에서 만남교를 지나면 김해율하유적공원과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나란히 있습니다.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김해시가 2011년 11월에 공동설립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입니다. 건물 디자인이 독특한데 2009년 서울 기용건축건축사사무소 고 정기용 건축가와 김지철 건축가가 재능기부로 제공한 설계입니다. 정기용 건축가의 마지막 작품이 됐지요. 태양광 시스템과 빗물 재활용 시설을 갖춘 친환경도서관이기도 합니다.

▲ 장유 신도시를 흐르는 율하천. /이서후 기자
▲ 장유 신도시를 흐르는 율하천. /이서후 기자

그 옆 작은 공원이 김해율하유적공원입니다. 공원에 독특한 질감으로 서 있는 건물이 김해율하유적전시관입니다. 앞서 장유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문화재 조사로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전시관에는 발굴 이야기와 함께 실제 유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카페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경남콘텐츠기업육성센터도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역거점형 콘텐츠기업육성센터' 사업으로 전국에서는 다섯 번째로 생긴 콘텐츠기업육성센터인데, 장유에 있는 것이 가장 건물 규모가 큽니다. 다양한 콘텐츠 관련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전시실에 가면 어떤 기업이 어떤 아이디어로 꿈을 일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센터 정면으로 반룡산이 보이는데, 산자락에 김해목재문화박물관이 있습니다.

동아대 전 예술대학 학장이자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을 지낸, 조일상 목공예가가 40년 동안 모은 전통 목공구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목공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장유 율하천 주변 한적한 거리. /이서후 기자
▲ 장유 율하천 주변 한적한 거리. /이서후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