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옛 지역 모습 볼 수 있어
옥산성지서 본 기성 8경 일품

거제면은 거제 지역의 오랜 중심이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제 지역 역사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게 그 증거다. 거제에서 조선 산업이 번창하면서 거제읍에서 거제면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곳곳에 정겨운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거니는 즐거움이 크다.

거제면 동네여행을 떠나기 전 거제면사무소 앞에 설치된 관광안내판을 보면 거제면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쭉 살펴보다가 '기성 8경(八景)'에 시선이 멈추었다. 거제시 진출입로 광고판에서 본 '거제 8경'과 달랐다. 기성은 거제의 옛 이름으로 기성 8경은 계룡산 자락 아래 우뚝 솟은 옥산성지 수정봉 누각에서 본 거제면의 경관이다. 거제 8경이 거제시가 선정한 빼어난 풍경이라면 기성 8경은 조선시대 귀양 온 선비나 관료들이 반한 거제 풍경이다.

▲ 옥산성지에서 본 거제면 일대. 기성 8경은 이곳에서 본 여덟 가지 풍경을 말한다. /이서후 기자
▲ 옥산성지에서 본 거제면 일대. 기성 8경은 이곳에서 본 여덟 가지 풍경을 말한다. /이서후 기자

거제면사무소 건너편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거제현 관아(국가사적 제484호)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관아는 조선시대 나랏일을 보는 관청이다. 지금의 관공서라 보면 된다. 거제현 관아는 고을 사또 집무소인 동헌과 객사인 기성관,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던 질청 등으로 구성됐었다. 지금은 동헌 자리에 면사무소가 있다. 객사인 기성관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사방이 트인 마루를 갖췄다. 규모로 볼 때 통영 세병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경남 4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질청 앞에 버스정류소가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질청 앞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거나 쉬었다 가는 모습이 뭐랄까, 생경하지만 정겹다.

거제현 기성관 뒤로 국가등록문화재 제356호 거제초등학교 본관이 보인다. 외관부터가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는 이 학교는 1956년 준공된 화강석으로 된 건물이다. 주민과 학부형들이 거제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화강석을 직접 운반하고 쌓았다고 한다.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예수성심상이 있는 곳은 거제성당이다. 1935년 거제군 동부면 명진리에 설립돼 1946년 현 위치로 옮겼다. 현 성당 건물은 1957년 건립됐고 거제초등학교 본관처럼 외벽이 화강석이다. 성당 앞 주택가에 오래된 목욕탕 옥수탕 건물도 독특하다.

상큼한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이승문 감독, 2017년)로 유명한 거제여상을 지나면 반곡서원이 있다. 1679년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유배생활 당시 머물렀던 곳에 거제 유림이 그를 기리고자 1704년 창건했다. 반곡서원 옆 계룡산 등산길을 따라가면 옥산성지다. 경상남도기념물 제10호 옥산성지는 거제부사 송희승이 백성을 강제로 동원해 8개월 만에 쌓은 성이다.

▲ 거제현 관아 객사인 기성관. /이서후 기자
▲ 거제현 관아 객사인 기성관. /이서후 기자

옥산성지 정상 수정봉 누각에 서니 눈앞으로 거제면과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치 산신령이라도 된 것처럼 이 마을을, 동네를 한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거제면에서 만난 사람들

◇갤러리 거제(Gallery Geoje) 정홍연 대표 = 거제시 거제면 읍내로에 있는 갤러리 거제는 거제 전체로 봐서도 흔하지 않은 민간 갤러리다. 전시 기획도 여느 전문 갤러리 못지않다.

작품을 팔아야 하는 상업 갤러리가 도심이 아니라 굳이 거제면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뭘까. 갤러리 거제 정홍연(58·사진) 대표는 남편 직장을 따라 거제에 온 뒤 평소 문화재와 학교가 많은 거제면을 눈여겨봤다가 2016년 지금 자리에 갤러리 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둘러보게 하겠다는 뜻도 있었고, 앞으로 지역 문화유산을 현대미술과 접목해 보겠다는 야심에 찬 꿈도 있었다.

▲ 정홍연 대표
▲ 정홍연 대표

"거제에 갤러리를 열 생각을 했을 때 처음에는 바다가 보이고 환경이 아름다운 장소를 생각했어요. 그러다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옛 거제 중심지였던 거제면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거제면은 난개발이 되지 않아 70~80년대 모습을 간직한 지역이에요. 전통문화유산을 살려 현대미술과 접목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곳이죠."

거제면에서 갤러리를 운영한 지 4년째, 조금씩 그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현재 동상이몽길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거제현 관아 주변에서 갤러리까지 이어지는 동네 유휴공간에 예술을 접목해 벤치를 설치하고 벽화를 그릴 예정입니다."

◇마마의 취미생활 김정희 대표 = 거제시 거제면 읍내로에 있는 '마마의 취미생활' 김정희(57·사진) 대표는 김해시 진영읍이 원래 고향이다.

거제로 시집와 거제면에서 산 지 올해로 32년째가 됐다. 이제는 고향 김해보다 거제에 산 세월이 더 많다. 김 대표는 원래 거제 도심인 고현동에서 9년간 한지공예 전문 매장을 했었다. 그러다 거제면으로 자리를 옮겨 8년째 마마의 취미생활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 김정희 대표
▲ 김정희 대표

김 대표가 생각하는 거제면의 매력은 먼저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재와 학교가 많기도 하고, 거제향교나 반곡서원 등 전통 시설이 주변에 있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절·한문 교육 등을 열기도 한다.

여기에 김 대표가 느끼기에 거제면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거제면은 인심 좋고 순박한 사람이 많아요. 거제면에 5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이 있는데, 옛날처럼 북적이진 않지만 지금도 할머니들이 장날에 나와 물건을 파는 모습들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저는 거제에서 이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 국가등록문화재 거제초등학교 본관. /이서후 기자
▲ 국가등록문화재 거제초등학교 본관.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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