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수성 채우는 소소한 공간, 매미성 근처·옥포 주택가에 생겨
피난민 아픔 깃든 장승포동 골목, 도시재생사업 이후 모습 기대돼

"아이고, 뭔 사람이 이래 많노."

지난주, 비가 많이 와서 한적할 줄 알고 찾은 거제 매미성에 관광객이 가득합니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매미성 자체가 요즘 거제에서 엄청나게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특히 성채 중간 이른바 '인증샷' 명소로 알려진 공간에는 긴 줄을 서야 겨우 사진을 찍을 기회가 옵니다. 한창 휴가철이라 매미성뿐 아니라 거제 곳곳 유명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히 엄중한 때라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불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나름으로 준비했습니다. 거제 비대면(언택트) 여행 코스입니다. 쉽게 말해 '괜찮은 곳인데 비교적 한적한 곳'이라고 할까요? 첫 번째는 거제 동부해안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바다 풍경을 보며 책을 읽다

몇몇 거제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거제에는 공연장 같은 것 말고 동네서점이나 작은 도서관, 작은 미술관 같은 소소한 문화 인프라가 없는 게 아쉬운 점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거제에 생긴 독립서점(동네책방)들은 반가운 공간이죠. 제가 알기엔 현재 세 곳이 있습니다.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책방 익힘', 사등면에 있는 '거제대로 북스' 그리고 옥포에 있는 '오늘, 위로'입니다. 동부해안을 따라가면 이 중 책방 익힘과 오늘, 위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거제 매미성 근처에 있는 책방 익힘. 독립출판물과 일반 서적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책방 내부. /이서후 기자
▲ 거제 매미성 근처에 있는 책방 익힘. 독립출판물과 일반 서적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책방 내부. /이서후 기자

책방 익힘은 매미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매미성 주차장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대금산 등산로 가는 작은 도로가 나옵니다. 거길 따라 올라가면 펜션이 하나 나오는데, 책방 익힘은 그 펜션에 딸린 2층 건물입니다. 1층 입구로 들어서다 말고 뒤돌아보니, 눈 아래로 바닷가 마을이 있고 그 너머 넓은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책방 앞 풍경이 이 정도면 말 다했죠. 1층에는 서점과 카페가 있습니다. 독립출판물과 일반 서적을 함께 팔고 있네요. 독립출판물은 10% 할인을 해 줍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꽂힌 책들을 구경하고 나니 점원이 2층에도 가보라고 하네요. 올라가니 탁자와 의자가 듬성듬성 놓인 마치 조금 큰 다락방 같은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바다 쪽으로 큰 창을 내어서 풍경이 시원한데, 그 창 아래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분이 계시네요. 조용한 음악과 커다란 바다 풍경과 커피 한 잔과 책 읽기라니 최고의 조합 아닌가요.

책방 익힘을 나와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갑니다. 곳곳에 눈에 띄는 예쁜 카페와 펜션이 많네요. 그러다가 커다란 조선소 풍경이 갑자기 펼쳐집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입니다.

오늘, 위로는 옥포 주택가에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아주동이네요. 다세대 주택(빌라) 1층 주차장 안쪽 깊숙이 있어 처음 가시는 분은 '여기 맞나' 하고 조심스러워질 겁니다. 중고 책과 독립출판물을 파는 아담한 책방입니다. 작지만 구석구석 배치된 아기자기한 장식과 예쁜 책들 덕분에 구경할 게 많습니다. 중고 책을 파니 헌책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제에 헌책방이 잘 없었는데 이곳이 생겨서 좋아하는 이들도 많답니다. 헌책은 기증을 받아 파는데, 수익 절반은 유기동물을 돕는 곳에 후원한답니다.

◇피난민 애환 서린 골목을 거닐다

옥포를 지나 다시 바닷가를 따라가면 장승포동입니다. 옛 장승포시의 도심이죠. 일제강점기 흔적과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애환을 간직한 곳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수행한 마지막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피난민 등 1만 4005명을 태우고 함경남도 흥남항을 떠나 도착한 곳이 바로 장승포입니다. 거제 서한숙 수필가가 쓴 '김치 5, 흥남에서 장승포까지'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 거제 독립서점 책방 익힘 2층에서 본 바다 풍경 /책방 익힘
▲ 거제 독립서점 책방 익힘 2층에서 본 바다 풍경. /책방 익힘

"흥남에서 장승포까지, 목숨을 건 사흘간의 깜깜한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중략) 그런 비참한 지경에서도 배 안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는데, 김치 1, 2, 3, 4, 5가 그들이다. 이는 한국 하면 김치가 먼저 생각난다는 이유로 미군에 의해 태어나는 순서대로 붙여진 이름이다." - <거제도 섬꽃 따라 이야기>(거제스토리텔링협회, 도서출판 경남, 2018년)

김치 5가 장승포에서 평생을 산 장승포가축병원 이경필 원장이라고 합니다. 장승포동 자체에는 굳이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없지만, 도심 골목 곳곳에 이런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생각하며 돌아다니는 그 자체로도 재미가 있습니다. 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시로 승격됐던 곳이니 역사 오랜 맛집도 많고요. 지금은 텅 빈 장승포여객터미널 건물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거제시가 장승포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재밌어지겠지요. 아, 장승포동에서 이곳은 한 번 찾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장승포항 동쪽 해안 수산물유통물류센터 앞 도로에 '복합문화공간 밗'이라고 있습니다. '공유를 위한 창조'라고 지역재생 벤처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이 만든 공간입니다. 아웃도어(야외 활동) 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이기도 합니다. '밗'은 '안과 밖'을 합친 이름입니다. 그 옆에 있는 '여가&안'이라는 공간도 독특합니다. 외부인에게 열린 곳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주택을 그대로 살려 지역민들이 함께 다양한 일을 벌이는 장소입니다.

동부해안 여행 종착지는 일운면 지세포리입니다. 면 소재지죠. 지세포 주변으로 볼거리가 많지만, 지세포 거리를 둘러보길 권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레트로(복고풍)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거든요. 특히 지세포 거리에 있는 분식집들이 다들 유명합니다. 떡볶이, 해물라면, 땡초김밥, 톳김밥, 찹쌀꽈배기 등등 집마다 특색있는 음식들이 조금씩 다르니 골라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 1층 테라스 뒤로 바닷가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 <br /><br />/책방 익힘
▲ 1층 테라스 뒤로 바닷가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책방 익힘
▲ 거제 장승포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밗. 야외 활동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 거제 장승포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밗. 야외 활동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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