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서 독립군 토벌한 악질
대전현충원 안장도 해선 안될 일

고 백선엽 대장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은, 그간 의회에서 독립운동가 선양과 친일잔재 청산을 강조해 온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대가는 언제까지 우리 민족을 괴롭힐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자아분열, 자기모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3·1의거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에 명확히 밝혀 놓았지만, 임시정부는커녕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고 고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더욱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생전뿐이랴. 백 대장처럼 퇴역 후 정부 요직을 거치고 재력까지 갖추며 예우받으며 살다 간 그에게 국가적 수준의 추모까지 허용해야 한다니.

백 대장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군관학교를 나와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조직된 독립군 토벌 정예부대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본군에 복무해도 소좌 이상만 수록했으나 간도특설대는 일반병까지 전원 이름을 올렸다. 그 정도로 악명인 것이다.

나는 백 대장을 위한 자리는 서울현충원에도, 대전현충원에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국가적 추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고인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지목한, 그래서 '국가 공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친일파이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랐다.

지금도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버젓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가 공인 11명, <친일인명사전> 기준으로는 68명이나 되는데, 여기에 또 한 명의 이름을 추가할 수는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고 싶다던 친일매국반민족행위자 신태영의 무덤이,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에 묻지 말라"던 조경한 애국지사 무덤과 불과 75m 거리에 있는 것이 국립현충원의 현주소다. '현충'의 이름이 더럽혀진 지 오래지만, '파묘' 논의가 본격화된 2020년 지금에 와 또다시 욕된 역사를 써 내려갈 수는 없다.

나는 도정 질문에 답변하러 나온 도지사와 교육감, 국장에게 '만약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독립항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 한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로 돌아가 자문해보면 도무지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어서다. 내 안에 제일 깨끗한 것, 인간적인 양심과 동포애가 개개인의 영달을 눌러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나. 그 시절 누구든 공과 과, 빛과 어둠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나의 과(過)로 인한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 과거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진정한 사과이다.

백 대장은 일본에서 펴낸 책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간도특설대 활동을 자랑스러워했다. 마지막까지 친일매국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몇 년 전 드러난 백 대장의 일본 이름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側)라 한다.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현 루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죽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이름을 되살려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 최근 논란을 두고 광복회 김원웅 회장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국군의 아버지라고 하면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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