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한테서도 빛이 날 수 있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빛난다는 말이 좋다. 눈부시게 빛날 미래, 반짝반짝 빛나는 내 모습 같은 말들, 내 것이 될 수 없는 말들, 나에게는 눈부시게 빛날 미래도, 오늘의 나는 반짝반짝 빛나지도 않는다. 남들에겐 가끔가다 인생에 몇 번씩 어려움이 찾아온다는데, 나에게는 인생 자체가 어떤 고비 같았다. 가난으로부터 지금껏 겪어온 포기들 때문이다.

너는 작문을 잘하고, 또 독서도 좋아하니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면 참 좋겠다. 중학생이었던 나를 가르치신 국어선생님의 그 말은 꽤 인상 깊었다. 꿈이 생겼고,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원래 예술이란 돈도 안 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많기 때문에 나는 그때 처음으로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문예창작과는 얼마든지 갈 수 있잖니. 엄마는 잘 돌려 말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게 내가 포기라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했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이 부서짐과 동시에 내 재능이 빛날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많았던 고비를 겨우겨우 넘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말과 글 덕분이었다. 출석 도장을 찍듯 시립 도서관을 드나들던 때에는 사서가 되고 싶었다. 해질 무렵 도서관의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책 속의 완전한 문장들이, 이 책을 찾아달라는 부탁이 좋았다. 읽는 걸 좋아하게 되니 쓰는 것도 좋아하게 됐다.

한창 '문학한다'는 겉멋이 들어 '다자이 오사무'에 푹 빠졌을 무렵에는 그를 따라서 불행을 쓰다 후에는 가난을 쓰게 됐다. 그 당시의 나는 불행과 가난이 단짝친구라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글을 썼던 모양이다. 그때 썼던 글을 보면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해서 불행한 주인공이 끝까지 행복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그 가난과 불행을 그대로 떠안고 인생이 끝나는 내용인데, 아마 '나'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거다. 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저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토로하고 싶었나 보다. 남들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에 대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잔뜩 지쳐 밤늦게 집에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페브리즈를 아무리 뿌려대도 지워지지 않는 삼겹살과 김치와 소주 냄새를 풍기며 신호등이 고장 난 횡단보도를 세 번이나 건너야 했고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골목길들 사이의 어두컴컴함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도 그 귀찮음과 공포는 때때로 나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 살아도 되는 거 맞나 싶을 땐 차들이 질주하는 횡단보도로 모르는 척 다리를 끌어볼까 생각했고,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볼까 생각했다. 결국에는 둘 중 그 무엇도 선택하진 않았지만 잠시나마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기뻤다.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내 진짜 선택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저 내게 주어진 것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니까.

이상하게 우는 날이 많아졌다. 시시때때로 눈물이 쏟아졌는데, 한여름 장마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남들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감성이 메마른 건 아니었기에, 수험생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경제적 조건이 와 닿는 날들에 유독 그랬다. 남들도 다 똑같이 힘들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까. 시험공부와 수능 공부와 면접 준비를 동시에 하며 얻은 것은 스트레스와 위장약뿐이었고, 또 시험공부와 수능 공부와 면접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눈부시게 빛날 미래 따위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빛나는 오늘을 살아본 적도 없는 내가 속한 현실은 나를 돈 많이 드는 외국 여행도 학비 비싼 사립대에도 보내 줄 수 없을 테니까. 어쨌거나 돈이 문제였다. 우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더더욱 말과 글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말은 나를 위로했고 글은 나를 웃게 했다. 그럼에도, 행복하지는 않아서 결국 직접 써야만 했다. 나는 쓸 때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학원과 아르바이트 탓에 꽤 오랫동안 글이 뜸했던 홈페이지에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도착한 지 반년도 더 된 메시지였다. 나는 그날 시험공부도, 수능 공부도, 면접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울었다. 마음이 너덜너덜한 하루였지만 글 속에서 언제나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보며 기운을 차렸다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그 메시지는, 반년 후에도 변함없이 살고 있던 나를 울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난해서 불행했지만 치열하게 살았다. 따지자면 내 인생은 비극에 가깝다. 나는 내 인생을 썼고, 비극을 쓰는 것은 희극을 쓰는 것보다 쉽다. 비극은 누군가를 슬프게 하지만 희극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니까.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나의 비극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불행하지만, 언제나 열심히 살았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창백한 말들로 가득한 비극 속에서 희극을 보여 준, 너덜너덜한 마음을 꿰매 줄 수 있었던 나의 말과 글. 사소한 글 한 줄과, 짧은 말 한마디가 지닌 그 힘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걸, 생을 견뎌가는 그 과정이 진정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아서 빛날 수 있었다.

독자에게 메시지를 받은 후 한참을 울었던 그날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시험공부와 수능 공부와 면접 준비와 더불어 백일장 준비를 하고 있고, 저녁마다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끔은 지쳐 울고 있지만, 이생을 견디는 나는 매일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가난해도 불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깨달아서 빛나는 동안에는 언제나 행복하다. 그리고 여전히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빛나고 있고, 오늘이 가면 여전히 빛나는 나의 내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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