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작 SF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올해 문화 핵심어 올라
과학기술 그림자 조명 인간-로봇 관계 고민도

2020년을 맞으면서 주목받은 만화 영화(애니메이션)가 있습니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이하 원더키디)입니다.

1989년 KBS 2TV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었던 공상과학(SF) 만화 영화였습니다. 그해 10월 6일부터 12월 29일까지 30분씩 13회 방송되었습니다. 31년이나 전에 석 달 정도 방송되었지만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된 이들에게는 인상 깊은 추억 중 하나일 겁니다.

"이제는 아재가 된 당시 국딩(국민학생)들에게는 '2020년이면 슈퍼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고, 우주를 탐사하는 날이 오진 않을까' 하는 희망을 심어주었죠." - 김난도 서울대 교수 <키워드로 정리해본 2020 트렌드>(코스콤 누리집) 머리말 중에서

이처럼 당시 아이들은 이 만화 영화를 보면서 '2020년에는 우주를 마음껏 돌아다닌다'거나 '2020년에는 외계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2020년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우주시대였던 거죠. 그러니 새해가 되면서 '결국 그 2020년이 오고야 말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KBS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에서 새해 첫날, 이 만화영화를 연속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좀 어려웠던 만화영화 = 원더키디가 나올 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국산 만화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습니다. <머털도사> 같은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나 무 도사 배추 도사로 유명한 <옛날 옛적에> 같은 시리즈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도 내놓을 만한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만들어 보자며 작심하고 만든 게 원더키디입니다. 당시 최고 기술을 지닌 세영동화가 제작에 참여해 최고의 성우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주제가를 당시 젊은이들이게 인기가 많던 3인조 가수 소방차가 불렀죠.

그러니 둘리나 하니, 영심이와는 수준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실제 원더키디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국제방송프로그램견본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프랑스, 일본 등에 수출되면서 우리나라 만화 영화 제작 수준을 알리는 노릇을 했습니다.

▲ 지난 1일 KBS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에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화면. /캡처
▲ 지난 1일 KBS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에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화면. /캡처

원더키디는 '한국 최초 SF·메카닉 TV 시리즈'였습니다. 쉽게 말해 우주선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외계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르에서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일반적인 만화 영화랑은 달랐습니다. '나쁜 놈이 나타난다. 그러자 착한 주인공이 나타난다. 아슬아슬 질 것 같다가 끝내는 이긴다. 와 이겼다 만세~'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극 전체를 이끄는 큰 줄거리에 따라 13화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야기 구조였죠. 그래서 로봇도 많이 나오고, 전투 장면도 많아서 재밌긴 했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운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기술의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 제1화 시작부분에 전체 배경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볼까요.

"2000년대가 개막하면서 지구에는 첨단 과학시대가 활짝 열렸으나 인구폭발, 자연자원의 소진, 공해 등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우주 탐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서기 2020년 어느 날, 지구의 우주개발 사령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은 새로운 별을 찾아나서는 인류 앞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었습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설정 자체는 익숙합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 파괴된 지구 환경, 새로운 주거지 확보를 위한 우주 개발 같은 부분 말입니다. 어찌 보면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 안에 담겨 있던 문제의식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원더키디를 분석한 글을 볼까요.

"198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는 산업화 시대의 절정기였고, 결과적으로 탈산업화 사회로의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 전환기에 특징적인 테크노포비아와 테크노필리아가 충돌하고 있었던 바, 그것을 추측할 수 있는 상황논리가 원더키디에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숭범, 문학수첩, 2018년) 182쪽

테크노필리아는 첨단 기술이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세상을 말하고, 테크노포비아는 첨단 기술이 인류를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을 말합니다. 원더키디는 이 중 테크노포비아의 처지에 서서 만든 거였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일행이 우주에서 맞서 싸우는 마라 마왕과 데몬 마왕은 지구인이 만든 인공 지능(AI)이 스스로 진화한 결과입니다. 마라 마왕은 '초격자 소자'라는 칩과 정보통신기술(ICT)로 공룡을 닮은 첨단 로봇 병사들을 만들어 조종을 합니다. 또 이들이 첨단 기술로 건설한 유피오(UPO) 행성 문명이 얼마나 삭막하게 묘사됐는지를 봐도 기술 발전의 미래를 얼마나 두려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는 = 원더키디가 보여주는 바람직한 미래상은 주인공 일행이 최후의 결전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아도나 행성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가족공동체의 회복이 있는 곳이고, 기술문명의 틈입에도 불구하고 생태계적 가치, 자연성, 경관적 가치 등이 완벽에 가깝도록 보존된 곳이다. (중략) 요컨대 아도나 행성은 파괴 이전의 지구이자 회복 이후의 지구를 표상하는 이상적 낙원으로서 원더키디가 지향하는 오토피아 모델의 가장 중요한 면모를 보여준다." - 198쪽

세계관은 어렵지만 만화 영화는 만화 영화입니다. 지금 다시 보면 세세한 부분에서 유치한 설정이 많이 보입니다. 딱 아이들이 볼만한 내용입니다. 어쨌거나 1989년의 원더키디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제 사회에서 중역을 맡은 나이가 되어 진짜 2020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느리긴 해도 원더키디 시대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성에 새로운 인류 주거지를 마련하겠다는 테슬라 기업이 그렇고, 천재 기사 이세돌을 가볍게 이긴 인공지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유토피아일까요, 디스토피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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