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기계산업 요람…현재 44개 대기업, 2600개 기업 입주
대기업 중심의 산업생태계 한계…인건비 상승·첨단기술 확보 못해 표류 중
스마트공장 등 구조고도화 실험 중…창원대로 활용한 메카밸리 조성 제안도

경남도청에서 창원광장을 거쳐 이어지는 대로의 끝자락엔 1976년에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있다. 사람들은 이 장소를 '공단관리청', '공단본부', '동남공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누군가는 청기와 지붕을 두고 '박물관' 같다고도 했다.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이하 산단공)'이다.

창원대로 중심지에 있는 경남지역본부 청사는 1974년 창원국가산단 개발과 동시에 착공해 산업단지 내 유일한 기업지원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고, 창원의 산업화 역사와 함께한 의미 있는 곳이다. 산단공 경남본부 배은희(56) 본부장을 만나 창원국가산단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암울한 현재, 그가 그리는 장미빛 미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럴 적부터 산단공 건물을 보며 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지금 한국GM 창원공장이 있는 옛 성주마을입니다. 어릴 적부터 산단공 청사를 보면서 컸죠. 당시만 하더라도 공공기관 수가 적어 이곳이 눈에 크게 들어왔어요. 청사가 지금은 증축됐지만, 당시 공단 부지에 있는 2층 청기와 건물은 확실히 눈에 들어왔죠. 지금은 창원 도시에 헬기 착륙장이 여러 곳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산단공이 유일한 헬기 착륙장이어서 헬기가 자주 뜨는 걸 보고 막연히 중요한 국가기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Q. 대학 시절 고시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고요?

"고위 공무원의 꿈을 품고 창원대 행정학과에 입학하였고 4년 동안 대학 내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고시 공부에 매달렸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곧바로 고시원에 들어가 행정고시의 길에 매진했죠.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재학 4년 내 고시에 합격하지 않으면 돈을 벌어야하는 형편이었습니다."

Q. 산업단지공단이 취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학내 취업보도방 게시판에서 창원기계공업공단 신입사원 공채를 한다는 걸 봤어요. 사실 그게 이곳 '산단공'인 줄 몰랐어요. 친구가 '거기가 우리가 말하는 청기와 건물이야'라고 해 마감 마지막 날 서류를 제출하고 응시해 합격했죠. 전국 공채로 10명을 채용하는 데 경쟁률이 꽤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웃음). 1990년 1월 8일 취업을 하고, 그해 2월에 졸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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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국가산업단지를 설명하고 있는 배은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장 /김구연 기자

Q. 창원국가산단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부탁합니다.

"우리나라 기계 산업을 대표하는 산업단지죠. 44개의 대기업과 2600여 기업이 입주해있고, '제조업의 핵심 허브', '기계산업 요람', '세계적인 기계산업단지' 등 다양한 닉네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성 당시에도 창원산단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거의 다 들어와 있었어요. LG전자(당시 금성사), 대우중공업, 한국중공업, 현대, 삼성중공업 등이 다 입주해있었죠. 현재도 44개 대기업이 입주해있는데, 삼성이 빠져 조금은 아쉽습니다. 삼성중공업은 볼보로 넘어가고, 삼성테크윈은 한화와 빅딜로 회사가 바뀌었죠. 지금도, 창원국가산단은 동남권 산업벨트의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2018년 말 기준 총 생산액은 50조 3000억 원이고, 경상남도 제조업 생산의 4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들어서는 노후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창원산단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아직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진단해보면 미중 무역분쟁, 한일 무역 갈등, 최저임금 등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도 이유겠지만,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창원산단은 대기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대기업 중심으로 협력·계열 관계 기업이 집적된 수직적 생태계에요. 경기가 좋을 때는 이런 구조가 산업을 끄는 역할을 하고,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국가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대기업에 의존된 제조업이 지금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게 문제죠. 인건비 경쟁력은 잃은 지 이미 오래고, 웬만한 범용 기술은 중국, 베트남 등 후발 국가들이 따라잡은 상황입니다. 중국은 오히려 우리보다 기술력이 앞서기도 하고요. 범용 기술, 평범한 아이템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거죠."

Q. 이를 타개하고자 산단공에서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44개 대기업과 2600개 중소기업이 맞물려 돌아가는 창원산단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생산 시스템'입니다.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중소기업의 혁신을 더디게 한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이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첨단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등한시해왔으니까요. 2015년부터 시행 중인 구조고도화 사업은 침체한 제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 목적입니다."

▲ KICOX글로벌 선도기업을 설명하고 있는 배은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장. /김구연 기자
▲ KICOX글로벌 선도기업을 설명하고 있는 배은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장. /김구연 기자

Q.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합니다.

"구조고도화사업은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리모델링하는 사업으로 산업단지의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지원시설 확충, 정주 여건 개선, 문화시설 확충, 혁신기능 보강 등을 통해 업종을 고도화하고 일하고 싶은 혁신산단으로 변화시키는 사업입니다. 대표사례로는 차룡단지 내 융복합 집적지구인 '창원스마트업파크' 조성사업입니다. 창원스마트업파크는 1만 1000평의 부지에 총사업비 2500억 원을 투입하는 민관협력사업으로 산학캠퍼스, 기업연구관, 혁신지원센터, 스마트지식산업센터, 복지시설(오피스텔, 기숙사, 어린이집 등) 등을 운영 중입니다. 그 밖에도 산업단지 환경개선 펀드사업으로 친환경 에너지테마파크, 액화수소 생산플랜트, 지식기반집적화센터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창원시 팔용동에 있는 산학융합지구도 최근 각광받고 있죠?

"네. 산학융합지구는 산업현장에 대학 캠퍼스를 조성하고, 기업 부설연구소를 유치하여 산업맞춤형 인력양성과 R&D, 청년 취·창업 지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곳에는 경상대, 경남대, 마산대 등 3개 대학 공동캠퍼스로 6개학과(학부과정 3개, 대학원과정 3개)를 운영중에 있으며 현재 330명의 학생이 공부 중입니다. 산업현장 맞춤형 인력양성이 목표인 데 현재 330명의 학생이 공부 중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학과, 과정을 신설해 취업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290명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연구관에는 45개의 기업부설연구소가 입주해 동일공간에서 산학협력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국에 13개 창원 산학융합지구가 산업부 평가에서 3년 연속 최우수등급을 받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Q. 창원산단 위기 극복을 위한 산단공의 역할은 뭐라고 보십니까?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중소기업 경쟁력 악화 등으로 창원국가산단 기업들의 분위기는 싸늘합니다. 단기간 경기회복을 장담할 수 없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산단공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그동안 추진해 온 구조고도화사업과 함께 스마트산단사업을 통해 기계산업과 ICT의 융·복합, 신산업 창출의 기술혁신, 제조업 산업구조 혁신(스마트공장, 제품의 서비스화), 플랫폼 경제(공유경제, 블록체인 등) 등의 사업에 집중해 산업단지의 융·복합을 이끌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입주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 체육, 복지, 편의시설도 계속 확충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창원국가산단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올까요?

"창원국가산단이 어렵다고 하면 우리나라 제조 산업 전반이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창원산단이 살아야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나는 건 확실합니다. 인건비를 낮출 수 없으니, 기술력을 높이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수단을 정부에서는 '스마트'로 본 거죠. 물론 스마트공장이 만능의 도구는 아니지만, 기업이 혁신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할 수 없습니다. 중소기업에선 '제조공정 자동화'와 '경영 정보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스마트공장 도입이 필수라 생각합니다."

Q. 최근 열린 창의혁신포럼에서 '창원대로를 활용한 스마트메카밸리' 조성을 주장했는데, 상세히 좀 알려주시죠.

"창원시 의창구 소계동 소계광장에서 성산구 외동을 관통하는 길이 15㎞, 폭 50m의 왕복 8차선 도로변을 중심으로 창원국가산업단지 제조 인프라를 혁신하는 '(가칭)창원스마트메카밸리'를 조성하자는 프로젝트인데 이미 일부사업은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설계한 청사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기존 창원대로는 산업단지와 배후도시가 분절된 형태였다면 이제는 혁신과 소통의 길로 나아가야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현재 창원국가산단에는 지식기반집적화센터, 친환경에너지테마파크, 복합혁신경제문화센터, 스마트크리에이티브팩토리, 창원 스마트업파크 등 7개 사업이 확정돼 있으며, 첨단멀티컴플렉스, 첨단생산기술연구센터, 복합혁신연구센터, ICT융합혁신센터 등을 계획 중입니다. 총 12개 사업에 1조 30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데 이 가운데 7건은 사업이 확정됐고, 나머지 5건은 현재 계획 중입니다."

Q. 올해로 산단공에서 근무한 지 만 30년인데 가장 기억이 남는 일이 있다면요?

"경남본부장으로 오기 전 서울과 대구(공공기관 이전 후) 본사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기획부서를 주로 담당했는데, 조직 내 꽃으로 불리는 기획조정실장을 맡았을 때가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기관평가가 중요한 데 기조실장을 했던 2016년 최고 등급을 받았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노력한 결과지만, 기획조정실장으로 기관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산단공의 위상을 높인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남지역본부장으로 3년간 역임하면서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고민하고 기업애로를 해소하기위해 몸소 뛰어다녔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올해로 본부장 임기가 끝나는데, 앞으로 계획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세계적인 기계산업단지가 있는 이곳 창원에서 우리나라 제조업 부흥을 위해 조그만 힘이나마 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산단공 경남본부장으로서 경남창원산학융합원 원장을 겸해왔는데, 기회가 된다면 제조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인력양성과 첨단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산학융합원에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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